1조원대 상속녀 행세 수천만원 뜯은 30대 실형

중앙일보

입력

자신을 시한부 인생의 1조원대 상속녀라고 속여 직장 동료를 유혹한 뒤 수천만원을 뜯어낸 30대 여성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수원지법 형사11단독 양진수 판사는 29일 사기와 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30ㆍ여)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양 판사는 “피고인은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고 역할 대행자까지 동원해 피해자를 철저히 속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으며 피해자를 협박하는 등 범행의 죄질도 매우 불량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며 “피고인의 정신적 질환에서 비롯된 범행이라 하더라도 선처할 결정적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2013년 7월 한 통신회사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면서 직장 동료 A씨와 사귀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미모의 여성 사진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뒤 A씨에게 전화를 걸어 “평소 호감을 갖고 있었다”며 접근했다. 이어 A씨에게 전화와 SNS로만 연락하며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1조원대 상속을 받게 됐다. 나 또한 뇌질환으로 투병 중이라 1~2년밖에 살지 못한다. 죽을 땐 모든 재산을 당신에게 증여하겠다”고 속였다.

이씨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1000억원의 잔고가 찍힌 통장 내역서와 고가의 외제차량 계약서를 A씨에 SNS로 보내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엔 친구로 위장해 A씨를 만나 “내 친구와 둘이 살 집을 구해 달라”고 부탁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급기야 A씨는 “암투병 중인 그녀가 힘을 낼 수 있도록 전해 달라”며 이씨에게 체크카드를 건넸다. 이씨는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해당 체크카드로 44차례에 걸쳐 물건을 사거나 현금을 인출하는 등 4732만원을 썼다.

A씨가 의심하기 시작하자 이씨는 돌변했다.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에 강간상해치사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또 친구들에게 SNS를 통해 “A씨가 내 친구에게 욕설과 폭행을 하며 상속받은 유산을 갈취했다. 친구는 그 충격으로 자살했다”고 허위사실을 퍼뜨렸다. 하지만 결국 A씨의 신고로 이씨의 사기 행각은 막을 내렸다.

수원=박수철 기자 park.suche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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