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틀리면 다 틀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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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혹시 ‘틀리지 말자’고 다짐하며 살고 있나. 그렇다면 다음 음악가들의 연주를 권한다.

우선 알프레드 코르토. 세상을 떠난 피아니스트다. 그의 연주는 실수 투성이다. 쇼팽이 피아니스트들 손가락 연습을 고려해 작곡한 연습곡이 있다. 코르토가 연주하는 이 곡을 들으면 기가 막힌다. 요즘은 피아노 전공하는 초등학생도 눈 감고 치는 작품이다. 12곡이 한 세트인데 코르토는 1번부터 실수를 시작한다. 틀리고 또 틀리고, 이제 조금 괜찮은가 싶으면 또 삐끗한다. 고장난 CD를 들을 때처럼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다음은 뤼카 드바르그. 25세 피아니스트다. 지난달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자. 유난히 긴 손가락을 괴상하고 불편하게 세워서 거미처럼 연주한다. 음악도 독특하다. 템포가 빨랐다 느렸다 오락가락 한다. 무엇보다 섞여서는 안될 잡음이 많다. 쉽게 말해 ‘대회용’ 연주가 아니다. 잘 교육받은 피아니스트가 보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연주는 틀렸다”고.

 드바르그는 4위에 올랐다. 11세에 친구가 피아노 치는 걸 듣고 독학을 시작했고 17세에는 아예 포기하고 수퍼마켓에서 일했다. 이번 콩쿠르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협연이란 것도 처음 해본, 특이한 참가자였다. 집엔 피아노도 없고 재즈 클럽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대회에 나왔다고 한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요즘 음악 좀 듣는 사람들은 드바르그 얘기만 한다. 콩쿠르 연주 후 청중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를 비롯해 각종 매체가 그와 인터뷰했다. 인터뷰 기사는 수천 번씩 공유됐다. 1등 상을 줄 순 없어도 기억에선 지우고 싶지 않은 연주자다.

 코르토 역시 인기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연주회마다 화제가 됐다. 그렇게 틀렸는데도 말이다. 누구도 흉내내지 않은 해석, 꿈꾸는 듯한 소리 때문이다. 무엇보다 ‘틀리면 좀 어때’라는 듯 기존의 질서를 뭉개고 나가는 연주법은 해방감까지 준다. 판에 박은 듯, 또 살얼음판을 걷듯 완벽한 음악에만 집착하는 연주자가 넘칠 때 코르토의 연주는 더 그리워진다. 결국 중요한 건 자기 스타일이다.

 음악만 그럴까. 언제나 실수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우리는 연주자로 치면 어떤 스타일인가. 혹시 대회에서 1등 아닌 4등을 할까 봐 이도 저도 아닌 작품만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