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대화 일본은 압력에 무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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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을 끝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일 3국 정상 간의 연쇄 교차회담이 마무리됐다.

한.일 정상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 원칙을 확인함으로써 지난달 14일 '평화적 수단'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노력을 선언했던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한.미.일 3국의 긴밀한 공조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북핵 해법의 큰 틀을 마련한 것이다.

한.미.일 3국은 북한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경우에 대비한 조치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盧대통령은 8일 재일동포 간담회에서 "한.미.일 3국 간에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웠다"며 "그러나 압력의 수단이 있을 수 있음을 폐기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이런 대북 압력 수단과 관련, 구체적 표현을 하지 않은 대신 "한.미, 일.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원칙을 재확인한다"는 말만 들어가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 명기됐던 '추가적 조치'(further steps)와 미.일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인 '대화와 압력', 직후 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이 언급했던 '보다 강경한 조치'(tougher measures)의 가능성을 문서상으로는 포괄적으로 수용해 놓은 셈이다.

청와대 외교관계자는 "안보동맹 관계인 한.미, 미.일 관계와는 달리 한.일 양자 간에 북한에 대한 추가조치 등을 문서로 합의해 놓을 경우 자위대의 한반도 파병 근거가 될 우려가 있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압력수단 행사의 현실화 가능성과 관련해선 두 정상 간 '코드의 차이'가 감지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이 사태를 악화시킬 경우 "더욱 강력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盧대통령은 "북한의 선택과 행동이 아주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는 그 다음의 행동이 있을 수 있다는 막연한 암시를 한 수준"이라며 대화 쪽에 무게가 있음을 거듭 각인시키려 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의 위법 행위(마약.납치와 공작선 파견 등을 지칭)에 대해 엄정 대처하겠다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盧대통령은 "범죄행위에는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일단 인정한 뒤 "그것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압박수단으로 오해될 수 있으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8일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서 盧대통령은 북한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핵 문제 해결, 남북 교류에 의한 한반도 평화, 경제적 번영 등을 통일보다 우선시하는 시각도 드러냈다.

한.일 정상 간에 대화와 압력의 시각차가 있다는 일각의 지적을 의식한 듯 盧대통령은 이날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일 정상 간에 시각차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방일 당일 일본이 유사법제를 처리한 것에 대해서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만큼은 못하나 꼭 예의를 어겼다든가 뒤통수를 맞았다든가 하는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당장 한반도에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도쿄=최훈 기자cho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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