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조개 까는 女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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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낙추(1952~) '조개 까는 女子'부분

삼십여 년을
태안시장 한 귀퉁이 눌러 앉아
조개 까는 女子
갯물에 퉁퉁 불은 낙지 대가리 손가락으로
안 보고도 척척 잘도 깐다
조그만 조개칼 한 바퀴 돌리면
깜짝 놀란 조갯살 바르르 떨고
나비 같은 껍데기는 소복이 쌓인다

조개 까듯 이놈의 세상 홀랑 까서
알맹이 껍데기 가려 놓으면 좀 좋겠냐고
까도 까도 고단한 삶을 탓하지만
조개칼 하나로 자식들 키우고 공부시켜
아무 걱정없는 줄 시장 사람들 다 안다



세상에 조개 까는 일로 먹고사는 여자가 한둘일까만, 태안 사는 이 여자가 대표가 될 만하다. 조개칼 돌림에 '깜짝 놀라는 조갯살'이며, 소복이 쌓인 '나비 같은 껍데기' 모양이 눈에 선하다. 손놀림에 장단 맞추는 거침없는 육담을 '비리기가 안흥 앞바다요/걸기가 풀두엄 더미다'로 엮어 보니, 이 '조개 까는 여자'는 '활어'처럼 싱싱하게 살아나 있다.

박덕규<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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