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산책] 오프 브로드웨이 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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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 마지막 일요일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선 무지개 풍선을 앞세운 '레즈비언.게이.트랜스 퍼레이드'가 성대하게 열린다.

쇼핑거리인 도심의 5번가에서 출발해 남쪽의 크리스토퍼 거리까지 행진을 벌이는데, 관람객을 포함해 1백여만명이 참가하는 뉴욕 최대의 퍼레이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1970년대의 디스코에서 현재의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게이 커뮤니티가 선도한 문화들은 대중문화를 이끌어 온 주요 코드다. 흔히 게이라면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게이들은 남들과 똑같이 직장을 다니고 똑같이 사랑 때문에 고민하며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리고 게이 커플의 위기 역시 이성 커플처럼 똑같은 이유로 찾아온다.

연극 '6월의 마지막 일요일(The Last Sunday in June.사진)'은 3년차의 위기를 넘겼지만 7년차에 가서는 위기를 넘지 못한 한 게이 커플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다.

이 작품은 지난 겨울 소극장에서 개막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추천 공연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관객의 성원과 비평가들의 호평에 힘입어 이 작품은 현재 오프 브로드웨이의 센추리 센터 극장으로 옮겨 장기 공연 중이다.

제목과 같은 6월의 마지막 일요일, 게이 퍼레이드가 있던 날 오후 한 나절 동안의 일이지만 그 속에는 그들이 함께 보낸 7년간의 삶과 그들이 서로 알지 못했던 그 너머의 삶이 모두 드러난다.

창 밖으로 퍼레이드를 구경하던 게이친구 톰과 마이클의 집에 다양한 게이 친구들이 찾아온다. 수다와 해프닝을 통해 톰과 마이클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음을 깨닫는다.

같이 살면서 얻게 되는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인해 서로에게 소홀해진다면 어느 커플이라도 더이상 함께 사는 게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이 메시지를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미국 TV에서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못지않게 인기있는 드라마인 '퀴어 애즈 폭스(Queer as Folks)'가 게이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다루고 있다면 이 연극은 훨씬 압축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작가 중 한사람이자 토니상 수상자인 조너선 톨린스가 대본을 썼으며 올해 토니상 시상식 대본도 그의 작품이다.

이번에 토니상에서 단연 주목을 받은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남자 주인공이자 대표적인 게이 배우인 하비 피어스타인의 열연과 더불어 이 연극의 성공은 한 세대를 지나면서 과거 흥미 위주로 게이를 다루던 극장가가 얼마나 내적으로 성숙해지며 발전해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조용신 뮤지컬 칼럼니스트(www.nyl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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