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당신은 진짜 전쟁을 몰라요” … 87세 할머니가 보낸 통한의 손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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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아베 총리, 진짜 전쟁이 뭔지 모르시네요.”

 16일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이 집단적 자위권 등을 행사하는 안보관련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가운데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은 87세 일본 여성이 아베 총리에게 손편지를 보냈던 사연이 일본 언론에 소개됐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안보 개정안에 반대하며 지난해 7월 아베 총리에게 직접 손편지를 보낸 자이이 아사코(材井あさ子·87)의 사연을 16일 보도했다. 아베 내각은 지난해 7월 1일자로 종래의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방침을 정하고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번에 해당 법안이 강행 처리된 것이다.

 자이이 할머니는 16일 마이니치 인터뷰에서 “전쟁으로 희생된 시민들의 슬픔을 지위가 높은 분들은 알 수 없는 건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안보 개정안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다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총리에게 편지를 쓰는 일뿐이었다. 그는 “다시 전쟁이 일어나 자녀들이 상처받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이이 할머니가 체험한 ‘진짜 전쟁’은 참혹했다. 현재 고베(神戶) 북구에 살고 있는 그는 70년 전 고베 대공습 때 집이 두 차례나 불타는 아픔을 겪었다.

 1945년 3월 고베 대공습 당시 그는 17세였다. 공습에 거리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됐다. 목숨을 건진 자이이 일가 4명은 남의 집 헛간을 빌려 살았다. 자신보다 일곱 살 많은 남편도 전쟁 피해자였다. 자이이의 남편은 참전 당시 폭발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파편이 왼쪽 귀 뒤에 박히며 5㎝가 함몰됐다. 남편과의 사이에 세 딸을 두었지만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이 휘두르는 폭력을 참다 못해 여러 번 가출도 했다. 퇴직 후에야 남편이 ‘외상성 뇌 손상에 따른 후유증’ 때문에 폭력을 휘둘렀다는 걸 알게 됐다. 모든 게 전쟁 탓이었다. 자이이 할머니는 “전쟁을 겪어본 사람들이 줄어 들면서 평화가 흔들리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일본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2013년 말 현재 전체 일본인 중 전쟁을 경험한 이는 20.5%다. 2025년엔 6%대로 감소할 전망이다. 마이니치 신문은 “아베 총리에게서 답장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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