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갑씨 "인권위의 금연건물 지정 거부는 잘못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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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ns Only]'금연운동 선봉대장'으로 이름난 박재갑(朴在甲.55) 국립암센터원장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자신들이 입주한 건물을 금연빌딩으로 지정하려는데 대해 거부한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 박재갑 국립암센터원장 인터뷰 동영상

인권위는 서울 을지로 1가 자신들이 세들어 있는 건물의 관리업체가 금연빌딩으로 지정토록 하겠다는데 대해 "금연이 시대적인 추세이기는 하지만 흡연자의 권리 또한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 인권위다운 모습"이라며 반대한 바 있다.

朴원장은 "비록 인권위가 자체적으로 금연건물 지정을 반대하기는 했지만 잘못된 결정은 힘을 갖지 못한다"며 "이번 결정이 범국민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금연운동에 찬물을 끼얹지는 못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흡연 박멸주의자'로도 알려진 朴원장은 "연간 우리나라 암 사망자의 6만명중 30%인 1만8천명이 담배로 인한 암환자일 정도로 흡연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를 간과하고 흡연자들의 인권만 생각한다는 것은 이들을 죽음으로 이르도록 방치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2년전 일산 국립암센터 남자직원들의 62%가 흡연자였으나 병원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지속적인 금연운동을 편 결과 현재는 모두 담배로부터 해방됐다"며 "당시에 흡연자들의 인권을 존중해 그들에게 흡연실을 제공했다면 아직도 그들은 치명적인 암을 유발하는 담배를 끊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朴원장과의 인터뷰 내용.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자신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의 금연건물 지정을 반대했는데?

▶그 말을 접했을 때 아직도 금연운동의 방향이 제대로 홍보가 안돼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왜 금연운동을 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무얼 추구해야 하는지 공감대가 정확히 설정돼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인권위 위원들이라면 우리나라 지도층의 대표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비록 자신들이 입주한 건물이기는 하지만 금연건물 지정을 반대한데 대해 상당히 안타까왔다.

-인권위 결정을 '반인권적'이라 할 수 있나?

▶잘못돼도 너무 잘못됐다.

-최근 이라크 파병 반대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도입 제동 등 국가인권위의 발언권이 커지고 있는데 이번 결정이 금연운동에 나쁜 영향 없을지?

▶거의 영향을 못 미칠 것이라 본다. 인권위가 올바르게 판단하고 권고를 했을 때 힘이 실리는 것이다. 인권위가 정식 회의 절차를 거쳐 결정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인권위가 공식회의를 해서 결정했다면 위상에 큰 타격을 입었을지도 모르겠다. 있을 수 없는 결정이다. 잘못된 결정은 누가 해도 힘을 갖지 못한다. 이번 결정에 대해 오히려 비판적인 언론보도가 많은 것을 보고 우리사회가 성숙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흡연권을 보호해 달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분들은 주장할 수 있다. 국가가 아직 담배판매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흡연권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마약을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듯이 담배도 언젠가는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 담배는 아직 식품이나 의약품으로 분류돼 있지 않다.

식약청이 지금처럼 담배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면 해체돼야 한다고 본다. 중독성이 강한 니코틴의 전달 물질인 담배를 향정신성 약물로 분류해서 재경부가 아닌 식약청에서 마약과 같은 품목으로 관리해야 한다. 왜 팔면서 못피게 하느냐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판매금지를 해놓고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 유예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담뱃값 인상에 대해 항의하는 흡연자들이 많은데?

▶담뱃값이 싸서 껌 사먹듯이 해서는 안된다. 지금보다 대폭 올려야 한다. 한꺼번에 1만원으로 올리기 어려우면 1천원씩이라도 매년 올려야 한다. 아편을 예쁘게 말아 싼값에 자판기에서 팔면 국민 상당수가 아편중독자가 될 것이다. 아편같은 담배를 싸게 누구나 필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민을 생각해서 담뱃값을 인상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건 잘못된 얘기다. 서민들이 담배로 인해 중병을 얻어도 국가는 100% 책임지지 못한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 하더라도 치료비의 50%이상은 자기 부담이다.

다만 담뱃값을 대폭 인상하되 그로 인해 생기는 수익은 그분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이런 소리를 하면 흡연자들은 '내가 봉이냐"고 반발한다. 영국의 대처 전총리는 일시에 담뱃값을 6배나 올렸다. 그런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거기서는 불평이 없었겠느냐.

소신을 갖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흡연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담배실명제를 도입하고 이들에게 흡연카드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담배 구입에 지출한 개인들의 비용을 집계해서 이들이 병원 갔을 때 50%정도라도 병원비로 쓸 수 있게 환급해줘야 한다.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으면 가족들에게 인계할 수도 있다.

-흡연자들이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담배는 판매 금지돼야 하는 상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4만명의 사망자중 4분의 1인 6만명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암사망자 6만명중 30%인 1만8천명이 담배로 인한 암환자다. 4일에 한번꼴로 대구지하철참사와 맞먹는 흡연 암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청산가리를 포함해 페놀·비소 등 69종의 발암물질이 담배연기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아직 많은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독성이 강한 니코틴은 향정신성 약물로 마약이기 때문에 금지돼야 한다.

아직도 국가가 담배를 팔고 많은 국민이 담배를 피고 있어서 갑자기 금지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불편하게 만들고 흡연 기회를 줄여야 한다. 인권위에서 흡연자들의 인권을 고려해 편안한 마음으로 담배를 필 수 있는 흡연실을 두도록 한 것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담배는 합법적이지 않느냐고 반발할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사람이 담배를 피고 있고 거대한 담배기업이 흡연을 합법화하고 있어 불법화 하기에는 어렵지만 잘못된 합법임에는 틀림없다. 잘못된 법도 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담배는 결국 우리 국민을 죽이는 주적이다.

흡연기회를 줄여야 할 뿐 아니라 비흡연자들의 권리를 지켜줘야한다.캐나다에서는 병원 담장밖 15m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담배연기를 100% 밖으로 배출해 주위에 영향을 주지않는 완벽한 흡연실은 거의 없다.

-흡연 가능한 비행기가 없어 장거리 해외여행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흡연공간이 축소돼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담배 못피우는 공간을 점점 넓혀 '담배는 끊으라는 거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흡연률을 낮춰야 궁극적으로 판매 금지가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담배를 끊기는 어렵다. 국립암센터도 내가 초대원장으로 취임했을 때 남자직원 62%가 담배를 피고 있었지만 2년반이 지난 지금은 0%다. 한두명이 술좌석에서 몰래 담배를 필 수도 있지만.

주위환경이 만들어줘야 한다. 처음엔 경내 금연만 해서 정문 이내에서 못피게했다. 직원 한 분이 장마때 우산받고 밖에 나가 피웠는데 "이렇게 해서라도 펴야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끊기를 결심했다고 한다. 인권차원에서 담배를 쉽게 피도록 안락한 흡연실을 만들어줬다면 그는 영원히 못 끊었을 것이다.

-술이 더 나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는데?

▶발효해서 만든 술은 폭음이 문제다. 포도주 한두 잔을 기분좋게 마시면 오히려 건강이나 문화에도 좋다고 본다. 담배가 암사망에 30% 원인제공을 술은 3%에 불과하다. 그것도 폭음자의 경우. 담배는 한대를 잘못 펴도 치명적인 유전자 손상 가져올 수 있다. 술과 담배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담배 피워서 생기는 피해보다 못 피워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주장은?

▶유전자의 변화로 암세포가 생겨난다. 중학생때부터 담배 피다 안 끊으면 폐의 70%에서 유전자 조각 떨어져 치명적인 유전자 결함을 초래한다. 고등학교 때 시작한 사람은 45%,대학교때 시작한 사람은 25%다.어릴 때부터 필수록 유전자 손상이 크다. 흡연은 암발생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정자나 난자에 손상을 초래하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흡연이 암발생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과학적으로 입증 안됐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얘기는 궤변이다. 담배회사들의 전략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미국 임상 악함회에서 세계적인 암 권위자 폴 번 박사도 이야기 했지만 담배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에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결론이 났다.

-담배를 피워 본 적은 있나?

▶고교때 후문 만화방에서 호기심에서 몇 번 빨아봤지만 그것이 전부다.

-청소년 흡연 문제가 심각하다.

▶거시 국민건강 플랜이 있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흡연에 대해서도 인권 운운 하면 큰일 날 소리다.중고생의 흡연은 가혹한 벌을 주더라도 막아야 한다. 현재 중고생의 흡연율이 워낙 높아 이들에 대해서는 지금 스타일대로 금연운동하고 있다. 미래의 흡연자들인 초등학생들에 대해서는 불시에 소변검사해서 흡연자를 찾아내야 한다. 부모님께 알리고 필요하면 입원까지 시키더라도 아주 세심하게 한명 한명에도 정성을 들여야 한다.

-담배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아주 나쁘다는데?

▶30-40대 흡연 남성들은 비흡연자에 비해 발기부전이 두배나 많다. 여자는 200만개의 난자를 갖고 태어나 이중 500개를 평생 사용한다. 학교나 직장 다닐 때 담배를 피다가 결혼하면 끊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러면 이미 늦었다. 흡연당시 이미 체내에 보유하고 있던 난소에 유전자 변형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금연국가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궁극적인 목표는 대한민국에서 담배를 추방하는 것이다. 부탄은 이미 시행중이다.

담배는 마약과도 같다. 마약을 용인하자고는 아무도 말 하지 않는다. 이제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야한다. 담배를 추방하면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이 100세가 넘을 것이고 보건의료비 지출이 가장 적은 나라가 될 것이다.

-신문과 방송에서 흡연 장면을 없앴는데?

▶방송에서 드라마 흡연장면 없앨 때도 담배의 해악을 알고 스스로 결정했다. 7개의 주요 신문도 흡연사진을 싣지 않고 있다. 이제는 신문 볼 맛 난다. 기분좋게 신문 넘긴다. 드라마를 봐도 부담없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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