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줄이고 묵직하게 … 달라진 최동훈표 액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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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최동훈 감독. [사진 라희찬 스튜디오 706, 쇼박스]

‘충무로의 흥행사’ 최동훈(44) 감독이 돌아왔다. ‘타짜’(2006, 684만 명), ‘전우치’(2009, 613만 명), ‘도둑들’(2012, 1298만 명)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다. 이번에 그가 들고 온 신작은 22일 개봉하는 ‘암살’.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친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암살 작전을 펼치는 독립군의 활약을 그렸다. 30년대 경성과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에 제작비 180억원이 들어간 대작이다. 전지현·이정재·하정우 등 쟁쟁한 스타배우가 호흡을 맞춰 일찌감치 주목받아온 영화이기도 하다.

 최 감독이 달라졌다. 이야기의 빠른 전개, 현란한 편집으로 고유의 스타일을 구축해온 그가 ‘암살’에선 긴 호흡의 이야기에 비장한 정서, 대형 액션을 펼쳐 보인다. 지난 13일 열린 언론 시사회를 마치고 만난 그는 “‘암살’은 조용하고 느리게 전개되지만 힘이 느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야기의 빠른 전개를 추구했던 내 전작과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자신이 구축해 온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른 영역을 개척한다는 건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결국 최 감독은 마음속으로 굳은 각오를 다졌고, 신세계에 발을 내딛었다.

 “누군가 내게 재미있는 영화의 기준을 물어보면 항상 ‘스피드’라고 대답했어요. 이제는 그 기준이 달라졌죠. 이야기의 흐름이 느려도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나이가 드니까 그런가 봐요.”(웃음) 그의 말처럼, ‘암살’에는 긴 호흡을 가진 이야기에 상당한 무게감이 실렸다.

극 중 암살 작전에 투입된 독립군 속사포(조진웅), 안옥윤(전지현), 황덕삼(최덕문)이 태극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 감독이 ‘촬영하면서 경건해지는 순간’으로 손꼽은 장면이다. [사진 라희찬 스튜디오 706, 쇼박스]

 그에 따르면, ‘암살’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구상하던 중, 우연히 본 독립군의 사진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작전에 나가기 전에 촬영했다는 사진이었다. 한 손에는 수류탄을 들고 있으면서도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음을 짠하게 울린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해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는 설명이다.

 ‘암살’은 제작사 케이퍼 필름에서 ‘도둑들’에 이어 만든 두번째 영화다. 최 감독의 아내이자 케이퍼 필름 대표인 안수현 프로듀서와 이번에도 호흡을 맞췄다. “아내는 영화의 예산이 늘어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이라며 “집에서조차 제작비를 걱정할 정도”라며 웃었다. 최 감독에게 안수현프로듀서는 든든한 조력자인 셈이다.

최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다 잘 풀리지 않으면 무작정 걷거나 당구를 친다고 한다. 몇 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정처없이 페달을 밟는다고도 했다. “무념무상에 빠져 걷거나 자전거를 타다 보면 시나리오에서 막혔던 부분이 뻥 뚫릴 때가 있어요. 가끔 집으로 돌아올 택시비만 호주머니에 넣고 지칠 때까지 하염없이 걷는데, 이번 작품은 유독 자주 걸었던 것 같아요. 하하.” 그만큼 신경을 많이 썼고, 도전적이었다는 뜻이다.

개봉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도 그는 밤을 새워가며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그런 말을 했어요. ‘영화는 다리로 찍는다’. 많이 돌아다니면서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의미죠.” 30대 초반, 재기발랄하고 한껏 기교를 부렸던 영화로 충무로에 신선한 자극을 줬던 그가 이제 40대 중반을 향해 가면서 영화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암살’은 최동훈감독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듯하다.

지용진 기자 windbreak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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