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씨에 보낸 편지, 대통령이 직접 구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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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5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노무현 대통령의 편지는 盧대통령이 구술한 것이라고 한다.

통상 실무진이 원고를 작성하면 대통령이 이를 보고받은 뒤 수정해야 할 부분을 지적하는 그런 절차가 아니었다는 것이 8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시 盧대통령은 '이기명 선생님에게 올리는 글'이란 편지를 통해 용인 땅 문제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 강력한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특히 盧대통령이 처음 구술한 내용은 "훨씬 강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편지를 읽은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는 盧대통령의 표정은 더 일그러져 있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참모들이 문안을 읽고 난 뒤 완화를 건의해 겨우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盧대통령은 공개된 편지에서 "'아니면 말고'식의 의혹 제기로 대통령 주변을 공격해 대통령을 굴복시키려 하는 방법은 지적돼야 한다"며 일부 언론을 '부당한 권력'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측은 '대통령의 노여움'이 후속 조치를 부를 가능성이 큼을 예고하고 있어 주목된다.

청와대 내부에서 언론 보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은 소송을 말리는 의견이 많아 무마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전반적인 사회 기류가 그런 쪽으로 가고 있는 만큼 이제부턴 언론도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언론 등의 문제를 말할 때면 톤이 하나 더 올라간다. 그럴 때면 분위기가 싸늘해지곤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를 전한 청와대 관계자는 "(역대 정권처럼) 대통령 본인을 비롯해 새 정부의 핵심 인사 등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가 '권력 비리'처럼 비치는 데 대해 盧대통령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반면 청와대 내부에선 노건평씨와 이기명씨의 부동산 거래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이 예방주사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평가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한 고위인사는 "李씨의 용인 땅 거래 등에 대한 논란이 정권 초기에 불거져 과도한 비판을 받고 있긴 하지만 조기에 털고 갈 수 있는 데다 향후 유사한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하는 경고 효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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