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법제 무대응 日서도 굴욕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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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방일(訪日)을 놓고 '굴욕 외교'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은 盧대통령의 일본 도착 직전 통과된 유사법제(전쟁 대비 법안)를 문제 삼았다. "미국 방문 때에 이어 또 한번 나라의 체통이 구겨졌다"는 주장이다.

박종희(朴鍾熙)대변인은 8일 "법 통과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어 속수무책이었던 데다 대통령이 법 자체를 문제 삼지 않겠다는 건 도저히 납득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귀국 즉시 합당한 해명을 하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못한 방일 준비팀을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민노당도 논평을 통해 "미국 방문 때는 미국 비위를 맞추다가 뒤통수를 맞더니 방일 첫날엔 외교적 배신까지 당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청와대와 민주당은 "현실을 인정한 실용주의적 접근"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민주당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은 "비록 방일 전 유사법제 통과라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으나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서도 설전이 치열했다.

'잿빛하늘'이란 네티즌은 "일본의 강대국화는 미국과 일본이 노리는 합작품인데 왜 대통령이 거기에 힘을 실어줬느냐"고 꼬집었다. 반면 '진실'이란 네티즌은 "지금은 서로 분쟁하기보다는 대통령을 믿을 때"라고 적었다.

그런 가운데 자민련이 유사법제(有事法制)를 통과시킨 일본 측 입장을 이해하는 듯한 논평을 발표해 논란을 불렀다.

유운영(柳云永)대변인은 지난 7일 "일본이 자국의 이익과 자위를 위해 힘을 기르겠다며 국론을 모으고 있는 데 대해 주변국들이 비난한다는 것은 소아병(小兒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과연 정치권.언론.시민단체들이 일본의 이 같은 행태를 비난하고 盧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할 자격이 있느냐"며 "극일(克日)을 위해선 힘을 모으는 것뿐이라는 점을 자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평은 柳대변인 명의지만 김종필(金鍾泌.JP)총재의 뜻이라는 게 자민련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자민련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은 "일본 우익단체와 똑같은 관점이라는 데 대해 자성해야 할 것"이라면서 역(逆)자성론을 폈다. 민주당 김성호(金成鎬) 의원은 "그런 논리라면 미국이 북한 핵문제에 강하게 나올 때 잘못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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