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오라클, 경쟁업체 인수 선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인사나 재무관리 등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계의 강자인 미국의 오라클이 지난 6일(현지시간) 경쟁업체인 피플소프트를 51억달러(주당 16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의했다.

이른바 적대적 인수.합병(M&A)이다. 이는 피플소프트가 동종업계의 JD 에드워드를 17억달러에 인수할 방침이라고 밝힌 지 나흘 만에 나온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런 움직임을 소프트웨어 업계의 불황이 바닥을 쳤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M&A가 벌어지고 있다는 시각이다.

오라클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앨리슨은 이날 "피플소프트를 인수할 경우 오라클은 더욱 수익성 있고 경쟁력 있는 업체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플소프트의 CEO 크레이그 콘웨이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제의는 피플소프트가 JD 에드워드를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비열한 행동"이라며 주주들에게 앨리슨의 제안에 응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관련업계에서는 피플소프트가 최근 몇년간 오라클의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고, 여기에 JD 에드워드까지 인수하면 더욱 곤란해질 것이라고 판단한 오라클이 적대적 M&A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라클은 인수가 성사될 경우 피플소프트의 기존 고객은 지원하겠지만 피플소프트 이름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방침에 대해 콘웨이는 "결국 피플소프트를 죽이겠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한편 오라클의 계획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두 가지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언급했다. 우선 소프트웨어 업계의 적대적 M&A라는 게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우수한 개발인력에 의존하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특성상 필요하다면 우수인력을 스카우트하면 되는데 회사를 통째로 살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또 오라클이 피플소프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직원이나 기술이 아니라 이 회사의 고객인데, 이 경우 역시 M&A를 할 이유가 적다고 타임스는 지적했다.

앨리슨은 JD 에드워드 인수에 대해서는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벌이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월가에서는 두 건의 대형 M&A가 잇따라 성사될 경우 소프트웨어 업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오라클의 공격적인 합병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둘이 합칠 경우 이 분야에서 최강자인 SAP와 한판 벌일 수 있긴 하지만 투입해야 할 현금 51억달러에 비하면 합병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 오라클이 제시한 인수가격 주당 16달러는 5일 피플소프트 주가에 6%의 프리미엄을 얹어준 것이지만, 인수계획 발표로 6일 피플소프트 주가가 17.82달러로 뛰는 바람에 오라클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지 않으면 피플소프트의 주주들이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