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동생 학살을 목격하고 17년간 유골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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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된 희생자의 유골을 가르키는 라미즈 누키치. [사진 인디펜던트 캡처]

보스니아의 농부 라미즈 누키치는 매일 언덕을 뒤졌다. 세르비아 군의 총탄에 희생된 아버지와 남동생의 유골을 찾기 위해서다. 17년이 흐른 후 마침내 그의 소원이 이뤄졌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라미즈 누키치가 아버지의 유골 일부를 찾아냈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는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의 생존자다.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은 피난민 주거지에 머물던 보스니아 이슬람교도 8000명이 4일 간에 걸쳐 희생되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악의 학살로 불린다. 그는 이 사건으로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누키치는 인종청소를 자행하던 세르비아 군을 피해 UN의 보호를 받는 피난민 주거지 스레브레니차로 왔었다. 하지만 거주지 보호 임무를 수행 중이던 UN의 네덜란드 군이 세르비아 군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후퇴하면서, 그의 가족도 학살을 피할 수 없었다. 세르비아군은 피난민 거주지에 있는 남자들을 골라내 트럭에 태운 다음 어딘가로 데려가 학살했다.

남자들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그는 아버지·남동생과 함께 숲으로 도망쳤다. 마을 언덕에 다다랐을 즈음 매복 중이던 세르비아 군의 총탄 소리가 울렸다. 아버지와 남동생은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누키치는 양치 덤불에 숨어 무차별적인 총격이 끝날 때까지 숨죽여 있었다. 그는 가까스로 언덕을 도망쳐 부인이 있던 피난민 거주지로 돌아왔다.

1999년 고향 카메니체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와 남동생이 묻힌 언덕을 찾아갔다. 그리고 매일마다 뼈를 찾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 널브러진 옷 조각, 구두 조각을 봤을 때 정신이 멍해졌다”고 말한 그는 슬픈 기억을 애써 참으며 흙 바닥을 뒤졌다. 쉽사리 가족의 유골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는 300명의 희생자 유골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보스니아 실종자위원회 대변인 사딕 셀리모비치는 “누키치 덕분에 많은 유골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말로도 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데 부족하다.”고 말했다.

17년이 되는 올해 그는 아버지의 유골 일부를 찾았다. 다른 유품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는 이 유골만을 가지고 오는 11일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이제 아버지가 묻히는 곳을 알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 세르비아 군사령관으로 ‘보스니아의 학살자’로 불리던 라트코 믈라디치가 체포돼 전범재판소의 재판을 기다리는 등 학살 사건에 대한 책임 규명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미국과 영국, 프랑스 3국이 피난민 거주지를 보호하지 않고 세르비아 군에 넘겨주려 했다는 기밀 보고서가 나왔다고 가디언은 4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의 책임 규명에서 3국이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석원 인턴기자(광운대 신문방송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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