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편지] 내가 원하는 친구의 모습 마음속 빈자리에 그려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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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략 두 가지 대답이 나온다. '아주 많다'는 대답과 '하나도 없다'는 대답. 재미있는 것은 이 두 가지 대답의 내용이 알고 보면 한가지라는 사실이다. '친구가 많긴 하지만,' '친구가 있긴 하지만', 정말 내 마음에 딱 맞는 친구는 없다!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한 행운이다. 더구나 그런 친구를 길 가다가 우연히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

옛이야기에는 석 달이나 삼 년 기한을 두고 친구를 얻자고 봇짐 지고 길을 나서는 주인공들이 나오지만, 지금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유랑을 떠나자면 3주간 또는 사흘도 짬을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대다수 사람들은 내 마음에 딱 맞지 않더라도 주위 또래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친구 찾기를 포기하고 산다. 더러는 마음 한쪽에 그런 친구가 들어올 자리를 비워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마리 홀 에츠가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 '나랑 같이 놀자'(시공주니어)는 쓱 한 번 보면 그저 귀엽고 사랑스런 그림책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친구 구하기'에 대한 크고 작은 성찰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숲 속에 간 아이가 동물들한테 다가가 '나랑 놀자'고 말을 걸지만 동물들은 놀라서 달아나기에 바쁘고, 아이는 결국 혼자 조용히 연못가 바위에 앉아 있게 되는데 그러자 뜻밖에도 아까 달아났던 동물들이 하나둘 찾아와, 심지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슴까지 찾아와 친구가 된다는 내용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내가 '나랑 친구 하자'는 뜻으로 다가가거나 말을 거는 것이 상대방에게 다른 뜻으로 전달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 조바심 치거나 막무가내 끌어당겨서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 조용히 혼자 지내는 모습이야말로 친구를 원한다는 메시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

언젠가, 어디선가 '내 마음에 딱 맞는 친구'가 다가와 어깨 쳐주길 기다리며 막연히 그리워만 하는 것은 쓸쓸하고 기운 빠지는 일이다. 나는 과연 어떤 친구를 원하는지, 어떤 친구 관계를 이루고 싶은지 마음 속의 빈 자리에 그려보는 건 어떨까.

에릭 바튀가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 '빨간 고양이 마투'(문학동네 어린이)는 멋지게 우정을 완성해 내는 고양이와 새에 관한 그림책이다. 마투는 몸이 빨간 만큼이나 남다른 데가 있는 고양이.

바람에 수염을 날리며 정처 없이 걷길 좋아하는 이 고양이는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새알을 줍지만 당장 꿀꺽 삼키고 싶은 마음을 참고 품는다.

아기 새가 껍질을 깨고 나오자 또 한번 식욕을 참고 씨앗과 곡식을 먹여 기르던 중 무럭무럭 자라난 새가 휙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새는 다시 날아오고 그 순간부터 둘은 친구가 되어 멋진 나날을 보낸다.

마침내 겨울이 오고, 새가 따뜻한 나라로 떠나는 바람에 난생 처음 외톨이가 된 쓸쓸함을 견디던 마투는 낯익은 새 소리를 듣는다. 예쁜 어미 새와 아기 새들까지 데리고 나타난 친구 새… 마투는 바람에 수염을 날리며 걷는다. 친구 새들을 등에 조르르 태운 채.

이상희 <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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