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음」의 심리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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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속담에 『참을 「인」자가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말이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불교의 육파나밀(바라밀) 가운데는 인욕바라밀이 있다. 모두 「참는 것」의 가치를 중시한 가르침이다.
최근 미국의 심리학자 「윌라드·게일린」은 『죽고 살 일이 아니면 열까지 세고·분통을 삭이라』고 당부하고 있다.그게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 좋다는 것이다.
『내면의 분노』(The Rage Writhin)라는 그의 최신 저서의 결론은 일견 너무 진부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미국 심리학계의 최신 연구를 반영하고 있다는게 중요하다. 미시사주간 타임지가 그걸 신중하게 다룬 뜻도 이해됨직하다.
『오늘의 대도시 생활양식이 바로 일촉즉발(short fuse)의 상태』라는게 「게일린」의 분석이다.
퉁명스런 관리, 난폭한 10대들, 불친절한 버스운전사·검표원등 도시의 도처에서 분통을 터뜨릴만한 존재는 얼마든지 만나게 된다.
사장에게 야단맞은 회사원은 동료나 아내에게 화플이의 구실을 찾는다.못난 짓이지만 어쩔수 없다.
『화풀이는 사생 결단의 마당에서나 필요한 것으로 사소한 일에 사용할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게일린」은 「분노」를 맹장갈은 존재라고 본다.지 금은 퇴화되어 골칫거리밖에 안되는 생물학적 흔적과 같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에서 분노의 의미는 지대하다.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미치했던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프로이트」조차 이에대해 언급한게 없다.
60년대 「콘라드·로렌츠」 의 『공격론』과 「로버트·애드리」의 『지역적지상론」은 음산한 결정론을 보였다.
그들은 인간을 진화에 의해 본능적 공격충동을 갖게된 동물로 규정했다.
70년대에는 분노를 「분출구가 막힌 에너지」로 보고, 화가나면 이를 툭 터놓고 완전히 배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압도적이었다. 「디어도·루빈」「아더·재노브」가 그 주도자였다. 그러나 80년대의 심리학자들은 극기적이고 예의심이 깊다. 선정속처럼 화를 죽인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카타르시스의 작용을 하지만 그건 다음 단계의 분노폭발을 예비하는 연습일 뿐이다. 화풀이는 습관이란 것이다. 그걸 자제하지 못하고 키우기만 하면 이사회는 결국 고함으로 가득한 처참한 공동체가 되고 만다.
『추악한 사회를 피하려면 개인의 권리주장대신 사회의 권리와 예절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게일린」의 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바가 있다.
이제 갑자년 묵은 해를 보내며다시 참음의 덕을 반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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