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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책임론 언급 7~8명뿐 … “여권 권력지형 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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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김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은 25일 오후 5시25분쯤 의원총회를 나서면서 기자들이 분위기를 묻자 “살벌해요”라고 말했다. 일부 친박 인사들이 유승민 원내대표 면전에서 사퇴를 요구하면서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시간 새누리당은 4시간째 의원총회를 하고 있었다. 모두 40명이 발언에 나섰다. 새누리당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마라톤 토론’이었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내자 새누리당 의원들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특히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표출하면서 의총 시작 전부터 의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비박계 의원들 사이에선 “친박 인사들이 전화를 돌려 유 원내대표 사임을 요구하는 세를 규합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의총은 긴장감 속에 오후 1시40분쯤 시작됐다. 되돌아온 국회법 개정안을 어떻게 할지 논의할 땐 의외로 차분했다. “대통령의 뜻을 존중해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말고 자동 폐기토록 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의총 중반 이후 발언에 나선 친박계 이장우·김태흠 의원이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하면서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이 의원은 “지역에서 유 원내대표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본다.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유 원내대표가 사퇴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김 의원은 “오늘 대통령의 발언은 유 원내대표를 신뢰하지 않고 협상 과정에서 국정 운영에 도움이 안 되는 국회가 우려스럽다는 메시지였다”며 “청와대와 당에서 신뢰를 잃은 원내대표를 야당에서 파트너로 생각해 주겠나.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나는 과거 (신한국당) 원내총무를 맡았을 때 노동법 파동으로 책임진 적이 있다”며 우회적으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했다고 한다.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을 지낸 이정현 의원은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김세연 의원이 “화합이 당을 위하는 것이다.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선 유 원내대표의 중도보수식 사고가 중요하다”며 감싸고 나섰다. 장윤석 의원도 “원내대표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고 거들었다. 원내대표 경선 때 유 원내대표가 아닌 이주영 의원을 지지했던 권성동 의원도 “국회법도 우리 뜻이고 원내대표 선출도 우리의 뜻”이라며 봉합에 나섰다.

 김성태 의원은 “하나하나가 헌법기관인 의원들의 결정을 거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여야가 합의한 국회법을 거부권으로 막았으니 새정치민주연합에 국회 운영을 마비시킬 빌미를 줬다. 의원들이 대통령의 거수기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라고 청와대와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유 원내대표의 사퇴나 책임론을 언급한 이는 7~8명에 불과했다. 상당수는 “대통령의 진노는 이해가 가니 거부권은 받아들이자”면서도 유 원내대표의 사퇴에는 부정적이었다. 결국 의총의 결론은 “국회법 개정안은 재의에 부치지 않고, 자동 폐기 수순으로 가게 하되 유 원내대표는 당·청 간의 관계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쪽으로 났다.

 당내에선 “대통령이 사실상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했음에도 당이 따라서 움직이지 않은 것은 임기 중반 여권 내의 권력 지형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글=이가영·김경희 기자 ideal@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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