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개헌 길목의 최대 고비는 1969년 7월 29일 있었던 민주공화당 ‘18시간 의원총회’였다. 오전 10시, 서울 장충동 영빈관으로 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모여들었다. 야인(野人)이 된 김종필 전 의장의 3선개헌 찬성 선회와, “개헌 문제를 통해 신임을 묻겠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당내 개헌 반대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았다. 초대 총재를 지낸 정구영 의원은 “개헌에 찬성할 수 없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는 신상발언을 남기고 회의장을 나갔다. 저녁 7시를 넘어서까지 개헌 찬성과 반대 발언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이때 이만섭 의원이 폭탄 발언을 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선행 조치를 취해야 개헌에 찬성할 수 있습니다. 이후락 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정부장은 부정부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즉각 퇴진해야 합니다.”
당시 공화당에는 정권 실세인 두 사람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지만, 아무도 나서서 비판하진 못했다. 적막이 잠시 흐른 끝에 회의장 여기저기서 “옳소”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김형욱 중정부장은 도청으로 의총 내용을 듣고 “이만섭 이놈 죽인다. 김성곤이도…”라고 불을 뿜었다. 김 부장은 이만섭 의원의 배후에 김성곤 의원이 있다고 믿었다. 김 부장의 거친 반발은 공화당 의원들을 더욱 단결시켰다. 공화당 간부로부터 의총 내용을 중간 보고받은 박 대통령은 “김형욱·이후락의 거취 문제는 나한테 맡겨달라”고 말했다. 이튿날 새벽 4시10분, 공화당은 찬성 당론을 확정하고 개헌안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를 소집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3선개헌 국민투표가 통과된 뒤 이후락·김형욱을 퇴진시켰다.
정리=전영기·최준호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