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처럼 울었지" 대학로서 고(故) 김운하 노제 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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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처럼 울었지,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지난 19일 오전 성북구의 한 고시원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망한 채로 발견됐던 연극배우 고 김운하(본명 김창규, 40)씨 노제가 25일 오후 12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치러졌다. 이 날 노제엔 고인의 연극계 동료와 배우 및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70여 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고인이 생전 좋아한 장사익의 노래 <찔레꽃>이 대학로에 울려퍼지며 노제는 시작됐다. 사회를 맡은 배우 홍대성씨는 "너무도 갑작스럽고 안타깝게 죽음을 맞은 고인을 기억하기 위한 자리"라며 이 날 노제의 의미를 밝혔다. 고인에게 추모사를 남긴 동료 배우 박주형씨는 울음을 참으며 "얼마 전까지 여기 대학로에서 공연을 했고, 다음 주면 다시 관객을 만나야 했던 사람"이라고 운을 뗐다. 박 씨는 "그곳이 아니라 여기 대학로에 있어야 하는데, (그곳에서는) 관객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늘 밝게 웃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고인이 활동했던 극단 산만의 대표 김선찬 씨는 고인을 "평범함보다는 기인이 어울리는 예인"으로 기억했다. "'운하'라고 불리면 잘될 것 같다고 해서 열심히 불러줬는데, 이대로 가는구나"며 말 끝을 흐리기도 했다.

동료 배우와 극단 관계자의 추모사에 이어 마로니에 공원을 찾은 시민 조문객들도 국화꽃을 건네는 것으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마쳤다. 극단 신세계는 "더 이상 이 사건이 가십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며 "노제가 끝난 후 벽제 화장장에서 화장 절차를 마치고 인천의 한 바닷가에서 해양제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1975년 2월 태어나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인은 2005년 연극 <당신이야기>를 시작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4월 공연한 <인간동물원초>는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노제에 참석한 한 시민은 "갑작스런 고인의 죽음이 안타까워 마로니에 공원을 찾았다"며 "마지막 가는 길에 많은 사람이 함께한만큼 좋은 곳으로 가실 것"이라 말했다.

무명 예술인의 사망 소식은 그리 낯설지 않다. 지난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모씨가 32세의 나이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던 적이 있었다.

2006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단편의 얼굴상’을 수상하며 촉망 받던 작가였던 최모씨는 사망 전 당장 먹을 밥이 없어 이웃집에 먹다 남은 음식을 구걸하기까지 했던 것이 알려졌다.그녀를 동정하는 여론에 힘입어 2011년 11월에는 예술가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예술인복지법'이 마련됐고, 이듬해부터 해당 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이 법은 김씨의 안타까운 사망을 막지 못했다.

이소영 인턴기자(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음악학) jean1992@naver.com

사진설명
1. 상주를 맡은 동료 배우가 슬픔에 잠겨 있다.
2. 마지막 인사를 위해 고인의 사진에 마주 선 동료 배우
3,4.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고인의 영정 사진은 공연 당시찍은 사진에 양복을 합성해서 마련되었다. 상은 단촐하게차려졌다.
5. 추모사를 남기는 동료 배우 박주형씨
사진=이소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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