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잊혀져 가는 '천안문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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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정치개혁을 요구하던 학생들을 총칼로 진압했던 '천안문(天安門) 사태'가 4일 14주년을 맞았지만 비극의 현장을 잉태했던 베이징(北京)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당시의 유혈 참극이나 그들이 내걸었던 개혁의 기치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진 것일까.

역사의 현장이었던 천안문 광장은 곳곳마다 공안(公安) 차량과 오토바이를 탄 순찰대원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지만 드넓은 광장에는 기념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는 관광객 10여명의 웃음 소리만 들릴 뿐이다.

"4일요? 단오절인데… 뭐 특별한 게 있을까요." 택시운전사의 반응은 생뚱스러웠다. 천안문 사태를 얼마나 기억하는지 넌지시 물었던 게 쑥스러울 지경이었다. 인터넷 어디에도 그 날의 사건을 언급하는 네티즌은 찾기 힘들고 언론 매체들도 약속이나 한 듯 일언반구도 없다.

사스 공포로 저마다 탈진한 것도 이런 '침묵'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대학가는 사스로 인한 휴교령이 해제되지 않았다. 따라서 교정에 삼삼오오 모여 나지막히 천안문 사태를 화제로 삼는 학생들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한 사회 초년생은 "그런 일이 다시 터지더라도 시위에 참가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요즘 학생들은 그저 졸업 후 취직하는 데 온 정신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문 시위의 주동자 중 한 명인 왕단(王丹)도 3일 미 의회 중국위원회에 출석해 "중국의 젊은이들은 요즘 금권(金權)주의에 빠져 돈만 생각하고 정치에 대해선 열정이 없다"고 짙은 아쉬움을 표했다.

정부의 입장은 아주 단호하다. 외교부는 지난 3일 "(6.4 사태는)평론할 가치가 없다. 정부와 당이 일찌감치 내린 결론에 전혀 변함이 없다. 아울러 지난 14년 동안 이룩한 우리의 발전은 정치적 안정이 가장 중요하며 인민의 근본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른바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穩定壓倒一切)'는 논리의 반복이다.

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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