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휘파람 부는 저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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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은봉(1953~) '휘파람 부는 저녁' 부분

얼마나 먼 곳에서 달려왔기에 손과 손, 마주 비비며 일구는 네 열기, 온통 지구를 뒤덮고 있는가

푸르른 비파소리를 울리며 쏟아져내리는 별이여 네 빛이 일구는 환희의 동그라미가, 오늘은 그대로 연꽃송이어라

숲속의 풀여치도, 귀또리도 어둠 뚫고 달려와 밝은 얼굴로 호이호이 휘파람 부는 저녁 너와 나, 이미 질긴 동아줄로 얽혀 있구나.



세상이 미처 다 어두워지기 전부터 마구 쏟아지는 별빛, 그것에는 필시 무슨 사연이 있는 거다. 몇 억 광년을 날아와 굳이 내 저녁 길에 '환희의 동그라미'로 '연꽃송이'를 만들어 보이는 까닭이 있는 거다. 자연이 하나씩 선물을 줄 때마다 그것을 고마워해 본 사람만이 안다. 별과 나의 태초부터의 인연을. 자연과 내가 맺은 질긴 동아줄 사랑을. 그러니, 먼 우주, 작은 먼지의 미세한 소리와 빛을 만나면 언제든 흔쾌히 휘파람을 불어 기억하라!

박덕규<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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