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들의 결혼축하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부모님, 두분의 결혼기념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두분의 사랑이 영원토록 변치않으시기를 빕니다. 정말정말 축하드립니다. 사랑하는 두분의 아들 동진·성진드림.』
두개의 촛대위에 불을 붙이더니 큰 애가 선서문을 낭독하듯 천천히 읽는다. 둘째는 핀을 사용하여 장식한 분홍색 헝겊의 화장비누를 기념선물로 내 놓는다. 그리고 박수를 치더니 어느새 준비해 놓은 카세트로 결혼기념일의 노래를 들려준다.
심성 고운 아빠가 나보다 먼저 눈시울을 붉히는지 마른기침을 거푸 한다.
1984년 11월 18일 -.
이날은 우리부부가 일생을 함께하기로 서약하며 혼인성사를 이룬지 꼭 15년이 되는 날이다.
이 뜻깊은 날 아이들로부터 축하를 받는다는 일은 상상조차도 해본적이 없다. 엄마 아빠 또는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기가 좀 어색한 모양인가 첫머리를 영어로 쓴 것을 보니 편지는 중학교2학년인 첫째가 썼고, 꽃리번까지 달아맨 비누공예는 손재주 좋은 둘째가 만든것이 틀림없다. 『여보, 이젠 아이들이 다 컸구료』. 두아들의 기습적인 축하에 놀랐다는 듯 아빠는 마냥 흐뭇한 표정이었다. 나 역시 목젖이 잠기는것이 아무도 보지않는다면 왈칵 울고싶도록 뿌듯함을 느꼈다.
『하느님! 열다섯 해가 흐르도록 저희 부부를 지켜 주시고 두 아들을 훌륭한 선물로 키워 주심을 진정 감사하나이다.』
아빠와 나는 어렵고도 즐거웠던 지난 세월들을 이야기하느라 밤늦도록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서울영등포구당산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