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서 성기묘사 전시회는 표현의 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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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에서 성기를 묘사한 미술품을 전시하는 것은 신성함을 해치는 행위인가, 예술과 표현의 자유인가.

서울 종묘공원에서 여성주의 미술행사에 여성의 성기.자궁 모형의 쿠션과 설치물을 전시한 미술가들이 이를 훼손하고 행사를 무산시킨 유림(儒林)에 대해 제기한 4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표현 자유'의 손을 들었다.

서울지법 민사항소3부(재판장 趙鏞龜부장판사)는 4일 "전시회를 물리력으로 저지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전주李씨 대동종약원에 "미술가 郭모씨 등 8명에게 1백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郭씨 등이 참여한 여성주의 미술가 그룹 '입김'은 2000년 9월 문화관광부 지원을 받아 '아방궁(아름답고 방자한 자궁) 종묘 점거 프로젝트'란 미술축제를 기획했다.

가부장적인 위계질서를 상징하는 종묘공원을 여성 미술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유교적인 엄숙주의와 여성주의적 해방 개념의 대립을 극대화한다는 것이 기획 취지. 여기에는 여성 성기 모양의 쿠션을 전시해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하고, 자궁 모형을 만들어 탄생을 체험하게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그러자 전주李씨 대동종약원과 유림단체는 "국가의 엄숙한 상징인 종묘를 욕되게 한다"며 행사를 취소하도록 요구했다. 축제 당일에는 이들 단체의 회원 1백여명이 몰려와 전시품을 훼손하고 시위를 벌여 행사가 결국 무산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시된 작품은 일부 관람객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표현이나 내용이 음란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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