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메르스 의료진 왕따시키는 나쁜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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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많은 의료진이 메르스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일부 학교에서 의료인 자녀를 ‘왕따’시키는 몰상식한 행위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는 최근 이대목동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인 자녀 10여 명을 귀가 조치했다. 이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치료 중이라는 사실이 공개되면서다. 지난 14일 정재근 행정자치부 차관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대전 대청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병원 직원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따돌림당한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대한의사협회가 보건복지부·교육부 등에 공문을 보내 이 같은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메르스가 주로 병원 감염으로 전파돼 병원이 가장 위험 지역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메르스를 차단하고 치료하는 곳 역시 병원이다. 메르스 방역전쟁의 최전방에 있는 진료·치료 병원의 의료진이 무너지면 국민들은 더 큰 위험에 빠진다. 그러잖아도 메르스 의료진은 사태가 길어지면서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이들을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메르스 낙인을 찍고 왕따시키는 것은 의료진의 사기마저 꺾는 일이다.

 메르스 왕따 현상을 그대로 두면 발병자들이 질병을 숨기는 게 만연할 수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거부하고 뛰쳐나온 141번 환자 같은 사례가 또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방역당국이 메르스를 통제하기가 더욱 어렵게 된다.

 메르스 환자 발생으로 마을이 통째로 봉쇄된 전북 순창군 장덕마을은 특산물인 블루베리 구매 예약이 대량 취소되고 관광객이 끊겼다고 한다. 순창군은 선제적 방역조치로 마을을 봉쇄했는데 사람들은 메르스와 아무 상관 없는 특산물마저 사지 않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메르스에 대해 지나친 공포를 갖고 과잉 대응하면서 해외 관광객들에게 한국을 방문하라고 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은 메르스 왕따 현상에 대해 정부에 대한 불신에 자기 보호본능이 지나치게 발동하면서 극단적 이기심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상황은 우리 사회에 불신이 전염돼 최소한의 공동체의식마저 실종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