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 100일] 與野 정치인들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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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노무현 정부의 1백일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걱정과 우려로 가득했다. 특히 '원칙과 시스템의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盧대통령의 탈 권위 노력을 높게 평가한 이도 있었으나 일부에 불과했다.

◆"임기 말 1백일 전인 듯"=정치인들이 도리어 "盧대통령의 국정 비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취임 1백일이 넘도록 뚜렷한 비전 제시나, 그에 따른 국정 운영을 보이지 못했다는 판단이었다. 오히려 사회적 갈등 속에 우왕좌왕 표류하는 모습만 보였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대표는 "대통령이 너무 준비가 안돼 있어 지난 3개월간을 허송했다"며 "마치 임기 말 1백일 전인 듯하다"고 했다. 이어 "지금이라도 국정을 끌고 나갈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같은 당 윤여준(尹汝雋)의원은 "권력을 잡겠다는 목표 의식만큼 어떻게 나라를 건설, 발전시키겠다는 목적 의식이 투철했던 것 같지는 않다"며 "그렇다보니 맨주먹으로 들어갔고, 현실이 생각보다 어려워지자 갈팡질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박진(朴振)의원도 "원칙과 전략이 없었다"며 "개혁에는 치밀한 청사진이 필요한데도 모든 것을 실험하는 식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국정 우선 순위가 잘못 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한나라당 김원길(金元吉)의원은 "내셔널 어젠다의 우선 순위에서 조.중.동과 싸우는 게 그렇게도 중요한 문제였느냐"라며 "盧정부가 메시지 전달에 실패,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강봉균(康奉均)의원은 "국민은 비전에 목말라하는데도 청와대가 분규 조정 등 일상 국정에만 매달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쓴소리를 했다.

◆"대통령이 제일 바빠서야"=청와대의 독주와 내각의 무기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한나라당 이상배(李相培)정책위의장은 "경제정책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청와대 참모진이 주도해 혼선이 생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진 의원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재빨리 구별해 방향을 제시하고, 내각에 동기를 부여하는 일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대통령이 가장 바빠 스스로 통치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시스템은 안 움직인다"거나 "대통령의 가장 큰 무기는 말이지만 말 자체가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임기응변이나 즉흥적 말을 삼가라"고 조언했다.

강봉균 의원은 "내각에서 청와대를 향해 도와달라고 할 때까지 좀더 참고 기다리라"고 했고, 같은 당 이훈평(李訓平)의원은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만 잘 보필하고 밖으로 나와선 안된다"고 했다.

김영환(金榮煥)의원은 대놓고 "문재인(文在寅)청와대 민정수석의 역할이 두드러져 내각의 기능이 돋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盧대통령이 가끔 격렬하게 표출하는 언론 등에 대한 피해의식도 걱정했다.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사무총장은 "집권 세력의 피해의식이 계속된다면 정말 참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여준 의원은 "(盧대통령이) 심리적으로 몰리면서 갖게 되는 피해의식으로 주변의 응집력은 강해질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지지 기반은 축소돼 국정운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훈평 의원은 "여당의 실종으로 盧대통령이 어려워도 도와줄 세력이 없어져 버렸다"고 주장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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