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벌금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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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뉴욕 시민들이 열받았다. 시가 각종 벌금 티켓을 남발하기 때문이다. 재정 적자를 벌충하기 위해서다.

미국 회사에 다니는 한인 제이 박씨는 얼마 전 맨해튼 길가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지도를 찾다가 경찰의 벌금통지서를 받았다. 주.정차 금지구역에서 차를 세웠다는 이유였다.

운전자가 차안에 있었고 정차한 시간도 불과 몇분인데 이럴 수 있느냐고 따졌지만 80달러짜리 벌금은 취소되지 않았다. 후미등이 깨진 차에도 벌금 티켓이 여지없이 발부되고, 주차 미터기의 정해진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딱지가 붙는다.

올 들어 지난 4월 말까지 경찰이 발부한 티켓은 약 1백30만장.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거의 세배로 늘어났다. 예산부족으로 시가 일반직 공무원을 해고하고 있지만 뉴욕시경은 최근 교통경찰 3백명을 추가로 고용해야 했다.

쓰레기나 간판과 관련된 벌금액수와 건수도 크게 늘었다. 가게 앞을 제대로 청소하지 않았을 때 부과되는 벌금은 지난 1일부터 50달러에서 1백달러로 뛰었다. 간판 크기나 색깔이 맞지 않는다며 벌금을 부과당한 경우도 3천건을 넘는다.

시민들은 경찰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사소한 위반에도 마구 티켓을 발부한다는 주장이다. 오죽하면 시의회는 '티켓 할당제 금지법안'을 추진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시의 의지는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시는 7월부터 주차 티켓 무효 청구소송을 담당할 심판관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주로 변호사들을 일당제 심판관으로 썼는데 벌금을 깎아주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발부한 티켓의 수금업무도 차질없이 매듭 짓겠다는 방침이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 할까.

이달부터 뉴욕주의 판매세가 0.25%포인트 인상된 데 이어 4일부터는 뉴욕시의 판매세가 또다시 0.125%포인트 오른다. 상인들은 불과 사흘 만에 금전등록기의 세금 계산 프로그램을 다시 손봐야 함은 물론 시민들의 주머니는 더 얇아지게 됐다.

뉴욕의 별명은 큰 사과(Big Apple)다. 타 지역에 비해 주민들의 혜택이 더 크다는 뜻에서 왔다는 애기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뉴욕에서 사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라고 시민들은 비아냥거린다.

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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