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항암제' 글리벡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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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글리벡이 탄생된 과정은 '스피드전'을 방불케 했다. 약효가 워낙 탁월하고 대체약품이 없다 보니 세계의 관심이 한꺼번에 쏠렸다. 그만큼 전폭적인 지원도 잇따랐다.

노바티스의 전신인 시바가이기가 이 치료제에 대한 선도물질을 발견한 것은 90년대 초다. 이후 선도물질을 화학적으로 조금씩 변환시키면서 최적의 효과를 나타내는 후보물질들을 만들었다. 이후 합병으로 탄생한 노바티스는 실험실에서 뚜렷한 약효를 보인 ST15171(나중에 글리벡으로 명명)을 98년 6월 임상시험 1상에 투입했다.

임상시험이 시작되자마자 노바티스는 예상치못한 상황을 맞았다.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백혈병 환자들이 시험 대상을 자청하며 구름떼 처럼 몰려 들었다.

결국 바젤라 회장은 글리벡 시판을 회사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마침내 99년 12월 임상시험 2상이 시작됐고,2000년 6월 마지막 3상이 이어졌다. 노바티스는 2001년 2월 미국 FDA(식품의약국)을 포함한 전세계 보건당국에 글리벡의 신약신청서를 제출했다.

3개월 뒤 FDA는 항암제로는 가장 빠른 검토 기간을 적용, 즉각적인 판매를 허가했다. 그해 12월 임상시험을 실시한지 3년만에 전세계 36개국에서 시판허가를 받아냈다. 지난해 글리벡은 전세계 80개국 이상에서 6억1천5백만달러(약 7천3백8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베스트셀링' 대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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