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6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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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얼굴에 핏기를 잃으며 눈동자가 돌아가던 무대가 간신히 숨이 돌아왔다. 그러나 신음만 흘릴 뿐 제대로 말도 못하였다. 왕노파와 금련이 무대를 부축하여 뒷문으로 해서 무대의 집 이층으로 옮겨놓았다.

"아버지, 아버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호떡 팔러 간 아버지가 이 지경이 되어 오다니! 아이구, 아버지, 아버지!"

영아가 이층으로 따라오며 청승맞게 울어댔다.

"그만 울어. 아버지는 도랑에서 미끌어져 돌에 부딪친 것뿐이야. 곧 일어나실 거야."

금련이 영아를 달래어 대야에 물을 떠오고 수건을 가져오게 하였다. 왕노파와 금련은 영아를 돌려보내고 나서 무대를 침상에 뉘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피범벅이 되어 있는 얼굴을 닦아주었다.

"이러다가 죽으면 어떡하지?"

왕노파가 낮은 소리로 금련에게 속삭였다.

"방금 영아에게 말했듯이 도랑에서 미끌어진 것으로 해야죠. 우리가 말을 맞추면 되잖아요."

"근데 말이야, 그 과일장수 운가 놈이 다 보았잖아. 만일 일이 잘못되면 그놈을 쥐도새도 모르게 죽여야 될 텐데. "

"만일 일이 잘못되면이 아니라 지금 당장 손을 써야죠. "

"지금 당장 죽인다 이거야?"

"죽일 필요까지는 없어요. 그놈이 무얼 노리고 남편에게 고자질을 하고 찻집까지 데리고 왔겠어요? 돈을 노리고 그랬을 거 아니에요? 서문대인에게도 돈을 뜯어낼 심산이었을 거예요. 그러니 돈으로 입막음을 하면 되겠죠. 우리가 또 사람을 죽여 살인죄를 범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거예요. 남편이 아직 죽지는 않았으니 운가에게 일단 일차 입막음용 돈을 얼마 쥐어주고, 사태가 악화되면 그때 가서 이차 입막음용 돈을 좀 많이 쥐여주면 되겠죠. "

"근데 운가 놈은 어디로 간 거야?"

"아마도 서문대인에게 가서 은근히 협박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오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돈을 달라고 떼를 쓰면서 말이에요. "

"서문대인이 운가 놈에게 돈을 주면 일차 입막음은 한 셈이네. "

왕노파도 가만히 생각하니 일이 잘못되면 자기도 서문대인에게서 돈을 뜯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자기만큼 더 확실한 증인이 어디 있느냐 말이다.

'세상에 돈 버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니까'.

왕노파는 서문경과 금련을 맺어준 자신의 죄도 있으므로 오히려 무대가 일어나지 못하고 이대로 죽었으면 싶었다. 금련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대가 기력을 되찾아 일어난다면 여러 면에서 골치가 아파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무대가 갑자기 죽으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으므로 서서히 죽어가도록 하여 자연사를 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 상책이었다.

무대는 닷새가 지나도 의식이 없는 듯이 누워있기만 하다가 조금씩 말을 하게 되고 미음 같은 것을 겨우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미음 한 숟가락을 삼키는 데도 목구멍이 타는 듯이 아팠다. 물을 마시는 것도 힘이 들 정도였다. 일어나 출입을 하는 것은 아직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금련은 무대가 약간씩 회복되는 것을 보고 은근히 불안해졌다. 미음이나 물도 마시지 못하도록 하여 병세가 더욱 악화되게 할 수도 있지만 영아가 늘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므로 그럴 수는 없었다. 병세를 악화시키는 길은 우선 무대의 마음을 괴롭히면서 뒤집어놓는 길밖에 없었다.

금련은 무대가 침상에 누워 멀건히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진하게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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