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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목계를 넘어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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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

술자리 뒷담화는 대개 즐겁다. 하지만 때로는 논쟁으로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토막 난 기억의 한 토막.

 “나는 대한민국의 목계는 황교안이라고 생각해. 그 양반이 (청문회를 통과해) 총리가 되면 롱런하겠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건 뭐냐면 절대 흥분하지 않는 사람은 오래간다. (내가 직접) 만나도 보고 요즘 TV를 통해 국정감사장에서 답변하는 걸 보면 어떻게 저렇게 하나 싶은 거지.”

 지금은 대기업 임원인 전직 언론인 선배가 이렇게 말하자 현직 모 언론사 부장이 즉각 반박했다. “에이. 물먹었을 때 얼마나 거품 물고 불만을 얘기했는데. 검사장 못 됐을 때. 그 다음에도 화 많이 냈어요.”(※현직 부장은 ‘내가 법조 출입할 때 직접 들었다’고 했다)

 목계(木鷄)라? 나무로 만들어진 닭. 어디서 들었던 단어다. 생각났다. 우리에겐 미운털이 박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정치헌금 문제를 추궁하는 야당 의원에게 야유성 발언을 한 뒤 “내가 아직 완전히 목계가 되지 못했다. 반성한다”고 사과한 적이 있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재임 시 ‘검사를 싸움닭이라고 본다면 최고수가 목계’라고 했었던 것 같다. ‘내가 목계다’고도 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목계의 출처는 장자(莊子) 달생(達生)편의 투계(싸움닭) 이야기다. 닭싸움을 좋아하던 주나라 선왕(宣王)은 기성자(紀<6E3B>子)라는 당대 최고의 훈련사에게 최고의 투계를 길러내라고 어명을 내린 뒤 열흘마다 결과를 물었다. 기성자는 처음엔 “강하긴 하나 아직 교만합니다”라며, 20일 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쉽게 반응합니다”라며 준비가 안 됐다고 보고했다. 30일 뒤 “조급함은 버렸으나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이라 감정이 다 드러난다”고 했다. 마침내 40일 뒤엔 “이제 멀리서 보면 나무로 깎은 닭처럼 덕이 있고 초연해 보입니다. 다른 닭들은 보기만 해도 달아날 것입니다”라며 투계를 바쳤다. 어떤 도발에도 요지부동, 무념무상하며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단판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수준이 됐다는 의미다.

 나는 황교안 후보자가 대한민국의 목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상대적으로 목계에 가깝다고는 본다. 그가 1983년 검사로 임관해 총리 후보자가 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05년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다가 눈 밖에 나 검사장 승진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고된 단련을 거쳤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유세 도중 커터칼로 얼굴을 베이는 테러를 당했을 때 “대전은요?”라고 한 장면과 황 후보자가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결정을 이끌어내던 장면은 묘한 데자뷔를 이룬다.

 걱정은 지금부터다. 황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라면 ‘미스터 국보법’이란 별명은 흠이 아니다. 총리 자리는 다르다. 목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투계장이 아니라 민생 현장에서 감동을 주는 존재가 되길 국민들이 바라기 때문이다.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