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과 채색 동양과 서양, 경계를 지운 파격의 붓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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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창 작 ‘별꽃’, 35X45㎝, 화선지에 채묵, 2010. 별을 헤던 화가의 어린시절 추억이다. [사진 갤러리H]

알록달록 색점(色點)이 박힌 화면 속에 선비 한 사람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들어앉았다. 봉황과 말, 비행기와 자동차, 꽃과 나비가 출렁이는 붉은 반점 속에 숨어있다. 검은 먹이 퍼지는 밤하늘 한 쪽에 울긋불긋 피어난 저것들은 무엇일까. 민화풍 장생도 같기도 하다. 홍석창(74) 홍익대 미대 명예교수는 이 그림에 ‘별꽃’이란 제목을 붙였다.

 “강원도 영월 내 고향은 밤이면 하늘 가득 별꽃이 피었어요. 백사장에 누워 별을 헤다 보면 그런 별이 되고픈 동경이 어린 내 마음을 흔들었죠. 점 하나에 추억 하나씩을 떠올리다 보니 점을 저렇게 많이 찍게 되었네요.”

 ‘홍석창 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인사동 9길 갤러리H는 홍익대 총동문회가 마련한 동문회관 화랑이다. 개관기념전으로 홍석창 교수를 선택한 이유를 김영찬 총동문회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홍익대에서 30여 년 후진 양성에 힘써 한국 회화 발전에 기여한 점이다. 그의 문하에서 뻗어나간 한국 동양화단의 작가들 수는 다 헤아리기 어렵다. 둘째는 열정적인 창작 정신으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장르를 아우르며 독창적인 화풍을 일군 일관성이다. 한학과 서예를 공부하며 기초를 닦은 뒤 서화(書畵)를 한 몸처럼 부리는 회화세계를 펼쳤다.

 홍석창은 초지일관 문인화(文人畵)의 길을 걸어왔다. 1980년대 수묵화(水墨畵) 운동을 펼치던 시절부터 글씨와 그림의 뿌리가 하나임을 작품으로 보여주었다. 문인화는 있어도 문인이 없는 세상이 됐다는 일각의 비판을 문인화의 현대화로 헤쳐 나갔다. 이번 초대전에 나온 ‘별꽃’과 ‘운필’ 연작은 한 번 지나가는 일필과 일회성의 붓질, 굵직한 필선이 일군 우직한 공간으로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화가는 이제 수묵과 담채,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조차 의식하지 않는다. 휘몰아치는 광풍과 같은 필력, 거리낄 것 없이 거칠고 진한 채색의 향연 속에 그림 그리는 자의 자유를 맘껏 풀어놓는다. 김상철 동덕여대 교수는 이 경지를 “법(法)에 머무르지 않고 예(藝)에 노니는 것”이라고 평했다. 파격을 통해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추구하고, 일탈을 통해 그 단서를 포착하는 것이 바로 석창의 예술세계라는 것이다. 그것이 동양회화 예술의 정수인 문인화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이자 정신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별을 헤며 별을 좇았던 소년은 그 천진함으로 일군 문인화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별을 찾았다. 전시는 16일까지. 02-735-3367.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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