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관 기자의 아하, 그렇군요] 혈압은 심장 높이서 재야 정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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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이 수도관처럼 딱딱하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인체의 혈관 총 길이는 무려 10만㎞. 지구를 두 바퀴 반 돌 수 있는 길이다. 심장을 출발한 혈액이 다시 심장으로 되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분. 그것도 심장박동이 1분간 60~70회인 안정된 상태에서의 시간이다.

이렇게 빠른 혈액의 흐름이 어떻게 가능할까. 동맥은 심장과 마찬가지로 말초혈관에 혈액을 보내기 위해 규칙적으로 짜주는 기능을 한다. 이른바 동맥의 탄력성이다. 대동맥의 경우 수축력이 더욱 강해 심장의 보조 펌프라고도 불린다.

영국의 목사 헤일즈는 1733년 유리 대롱을 말의 목에 꽂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혈액 기둥이 무려 2.7m 높이로 솟구쳐 올랐기 때문이다. 혈관에 압력이 있다는 사실을 안 첫 번째 사건이었다.

혈관의 탄력(압력)이 혈액 순환에 절대적인 요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측정기로 선보인 사람은 리바 코치다. 1896년 팔뚝에 감는 완대에 바람을 넣는 기구를 개발, 혈관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혈압을 측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수은혈압계는 코르트코프라는 러시아 의사에 의해 완성됐다. 1905년 그는 동맥을 폐쇄.이완했을 때 나는 소리를 통해 혈압을 측정, 진단 영역의 새 장을 열었다.

혈압을 잴 때를 상상해보자. 의사는 환자의 윗 팔뚝에 완대(커프)를 감고 고무펌프로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완대에 들어간 바람을 빼면서 청진기에 귀를 기울인다. 의사가 듣는 소리는 무엇일까. 완대에 바람을 가득 넣으면 동맥이 완전히 막힌다. 그러다가 바람을 조금씩 빼면 '쉬-쉿'하며 혈액이 좁은 혈관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 순간 혈압계의 눈금이 가리키는 수치가 수축기 혈압(높은 혈압)이다. 다음은 완대의 바람을 완전히 뺀다. 막혔던 동맥이 개통되면 혈액의 흐름이 자유스러워지고, 따라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시점이 이완기 또는 확장기 혈압(낮은 혈압)이다. 이렇게 혈압은 두 개의 수치로 나타낸다. 수축.이완되는 혈관의 탄력성을 수치로 보면서 혈액 순환의 건강을 확인하는 것이다.

혈압계는 일종의 압력계다. 하지만 혈압계는 일반 압력계 단위와는 다른 ㎜Hg를 쓴다. Hg는 수은의 원소기호. 혈압계에 들어가 있는 수은이 눈금을 가리킨다고 해서 만든 단위다.

혈압은 윗 팔뚝을 지나가는 동맥에서 잰다. 심장과 비슷한 높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혈압을 재는 위치가 심장보다 높으면 혈압은 낮게, 낮으면 높게 나온다. 혈압은 잴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생리적인 면뿐 아니라 심리적.환경적 요인까지 영향을 미친다. 평소 정상인 혈압도 의사 앞에서 재면 높게 나오는 사람도 있다. 화이트 가운 증후군이다.

뇌졸중.심근경색 등으로 대표되는 순환기질환은 단연 국내 사망 원인 1위다. 특히 전문의들은 아시아권을 '화약고'로 부르기도 한다. 폭발적으로 비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순환기질환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내과의사회가 이달부터 5월 말까지 '뇌졸중 예방! 혈압 119와 친구(79)하기'캠페인을 벌인다. 119는 수축기 혈압의 안전기준을, 친구와 비슷한 발음을 내는 79라는 숫자는 확장기 혈압의 안전기준을 의미한다. 혈압 수치는 곧 생명선이다. 요즘엔 가정용 디지털 혈압계도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혈압계를 친구처럼 가까이 두고 적어도 수축기 혈압 119, 확장기 혈압 79 이하로 혈압을 관리해보자.

고종관 기자

도움말 : 삼성서울병원 의공학실 권혁남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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