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6년 만에 유리천장 깨지다…옥스퍼드 총장단에 여성 입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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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인 옥스퍼드대에서 부총장(vice chancellor)직이 신설된 건 1230년이다. 우리 대학 기준으론 사실상 총장직이어서 때때로 총장으로 소개되곤 한다. 785년 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786년째엔 비로소 여성이 차지하게 된다. 가장 오랜 유리 천장들 중 하나가 깨지는 셈이다.

옥스퍼드대는 28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에 있는 세인트 앤드루스대 루이스 리처드슨 총장(56)을 앤드루 해밀턴 현 부총장의 후임으로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대학의 의결기구인 총회에서 승인을 받아 내년 1월 취임하게 되면 리처드슨 교수는 272대 부총장이 된다.

그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집안의 첫 대학 진학자였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정치학 석사를, 하버드대에서 정부학 석사 및 박사를 받았다. 하버드대 래드클리프 고등학문연구원의 학장으로 있다가 2009년 세인트앤드루스대 총장으로 발탁됐다. 600년 된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도 첫 여성 총장이었다. 안보와 테러 전문가로 테러조직이었던 아일랜드공화군(IRA)을 연구하기도 했다.

세 아이를 둔 리처드슨 교수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옥스퍼드대는 세계의 위대한 대학들 중 하나”라며 “이런 놀라운 대학을 이끌 기회를 얻게 된 것을 엄청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남자라도 다르게 느꼈을 것같지 않다”면서도 “여성의 지명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근래 대학들의 화두인 재정 확보와 관련해선 “옥스퍼드대가 성공적이라고 하나 하버드대 기부금이 옥스퍼드대보다 다섯 배”라며 의지를 보였다.

옥스퍼드대 총장인 크리스 패튼 경은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지도자로서 탁월한 이력이 지명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경쟁 대학인 케임브리지대는 2003년 첫 여성 부총장을 배출했는데 앨리슨 리처드 교수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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