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일부프로 흥미 우선…「교육」은 뒷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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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쩌다 한번 TV를 켜면/나는 무중력 상대가 되고 만다. 동화책 얘기보다/연속극 내용을 줄줄 꿰는/12살짜리 선경이는/현란한 쇼프로에서 표정만 짓는/가수들에게 투덜투덜 욕을 하면/얼굴만 예쁘면 된다고』
최근 W대의 고교생 문예 작품 공모전에서 당선된 여학생의 『TV를 보며』 란 시의 한 구절이다.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오늘의 TV방송은 어느새 사회교육의 주요한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이러한 TV방송의 일부 프로그램이 전혀 교육적인 배려가 없이 흥미만을 쫓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TV연속극은 원래 주부들의 심심풀이용으로 출발했으나 이젠 온 가족이 즐겨보는 프로중의 하나가 됐다.
MBC-TV의 주말 연속극『사랑과 진실』의 경우 한 전직교사의 이야기를 질질 끌고 있어 교사상을 흐리게 하고있다는 지적이다.
정모교사 (서울H여고)는『극중인물 중 교사 강선생이 매일 술이나 마시는 가장 패배적이고 현실도피적인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며 『교사를 제자와 사랑놀음이나 하는 타락한 교사상으로 질질 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창작에 있어서 소재선택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문제는 전체적인 드라머 구성상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인물을 필요이상으로 왜곡시키는 점에 있다는게 교육계의 반응이다.
역사극 또한 자체적인 역사와 흐름보다는 왕실중심의 일화에 치중하고 있어 역사교육을 오도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MBC-TV의 드라머 『설중매』의 경우 한명회와 같은 일부 인물의 영웅적 묘사나 전체 이야기 구성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다른 부분이 있어 학생들을 당황하게 하고 있다.
국사를 가르치는 박모교사(서울K고교)는 『학령기 시청자에게 역사극은 역사를 가깝게 인식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며 『권력주변인물들의 음모를 역사의 중심이야기로 인식시켜서는 안될것』이라고 말했다.
역사극은 학교에서 가르칠수 없는 생동감을 전달해주는 창구로서 사전에 충분히 교육적으로 닦여져야 한다는 것이 일선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회교육적 차원에서도 역사를 지나치게 음모집단의 모의과정으로 분해함으로써 국민들의 무력감을 조성해서는 안될 것이라는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지난달말 KBS 제1TV로 2시간동안 생방송됐던 『세계의 경이 「유리 겔러」쇼』 또한 교육적 측면을 전혀 고려치 않은 무책임한 프로그램이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아무런 여과없이 생방송되자 학생들은 학교수업시간에도 흉내내기에 바빴고, 심지어 부상한 학생도 있었다.
고모교사(서울S국교)는 『충격적인 내용을 생방송으로 내면 학교의 과학교육이 설땅은 어디냐』며 『「유리·겔러」쇼는 어디까지나 쇼로 받아들여야할텐데 그 여과나 비판이 없어서 어린이들에게 미친 비교육적 영향이 컸다』고 지적했다.
김인회교수 (연세대)는 『TV를 자주 보다 보면 유사한 현실환경에도 무감각해진다』며 『뉴스와 교양위주로 재작돼 TV가 끼칠수 있는 비교육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방송도 사회교육적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며 최근 거론되고있는 공영방송의 개선 움직임에 기대를 걸고 있다. <양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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