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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협, 숫자 지키기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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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한변협의 '숫자 지키기' 노력이 눈물겹다. 2월 21일에는 변협 신임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변호사 대량 생산이라는 은폐된 목적을 위해 엉뚱하게 미국식 로스쿨을 이용하고 있다"고 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사뭇 공격적인 음모론이다. 그러나 뒤이은 인터뷰에서는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 다수의견이라는 "약속이 지켜지면 이의 없다"고 표정을 바꾸었다. 사개위 다수의견이란 "시행 당시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기준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의 정원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것이다. 결국 변협 회장의 장대한 음모론은 '숫자 지키기'를 위한 엄포였던 셈이다.

4월 1일에는 변협이 로스쿨 총 입학정원은 "600여 명이 적당하다"는 내용의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보도되었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주장이니 이 또한 '방어용 공포탄'이다. 4월 5일에는 변협 로스쿨대책위원이 기고를 통해, 로스쿨 입학정원을 1200명으로 하고 그중 1000명을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시킨다고 하는데 과연 "200명을 탈락시키는 것이 가능할까"라며 세심한 걱정까지 덧붙였다. 이쯤 되면 '숫자 지키기'를 넘어 '숫자 목매달기'의 경지다.

왜 로스쿨인가? 사개위 건의문에 나와 있듯 국민의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법률가를 양성해야 하는데, 현재의 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법학 교육기관을 설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21세기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법과대학도 법률가도 '통째로' 바뀌어야 한다는 요청인 것이다.

그런데 변협은 숫자만은 절대 못 바꾼다고 한다. 숫자가 늘어나면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숫자가 적어야 특권이 확보된다면 말이 되지만 숫자가 적어야 질이 확보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숫자가 적기로야 세계에서 으뜸가는 한국의 변호사들이 어째서 인구 대비 숫자가 33배나 많은 미국의 변호사들에게 국내 법률시장을 뭉텅뭉텅 내주고 있는가? 악덕 변호사 문제는 변호사 단체가 나서서 자정하고 징계하고 처벌받게 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일을 해야 할 단체가 '악덕 변호사가 생기면 어쩔 것인가'라고 국민을 협박하다니 이게 과연 가당한 일인가?

2004년 4월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변호사연합회는, 도입 방침이 정해지기도 전인 2000년 11월에 "21세기 일본의 시민의 사법"을 위해 "법조 인구의 대폭적인 증원이 필요"하며, "법조 양성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로스쿨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결의했다. 그 결의문 속에는 "법조 인구는 이용자인 시민의 관점, 시민의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 법조 인구를 법률가들만으로 통제하는 시스템은 적절하지 않다"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인구 대비 변호사의 숫자가 우리보다 많은 나라에서의 일이다.

로스쿨 제도의 도입을 위해 할 일이 많다. 적성시험을 어떻게 실시할 것인지, 교육내용과 방법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변호사 자격시험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법조와 법학자들이 당장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600명이니 1000명이니 1200명이니 하며 숫자 놀음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변협은 자신의 모습을 깊이 반성하고 개혁에 동참하라. 변호사들에게는 '자식 낳는 일'인 법률가 양성제도의 개혁을 위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라. 개혁이 정 싫다면 손을 떼고 물러나는 것이 '공익'을 내걸고 있는 단체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김창록 건국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