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렇게 한심한 식약처에 식품안전 맡길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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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엊그제 백수오 제품 전수조사 결과를 내놨지만 소비자와 시장의 혼란이 정리되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소비자는 백수오를 계속 먹어야 하는지, 어떤 제품을 먹어야 할지 여전히 헷갈린다. 건강기능식품 파동에 난데없이 백세주가 휘말려 100억원가량의 제품 회수 소동이 벌어졌다.

 식약처는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문기관이다. 이번 백수오 건에서는 아마추어로 전락했다. 백수오는 건강 욕구 상승 덕분에 최근 몇 년 사이에 갱년기 여성들 사이에서 광풍을 몰고 왔다. 일부에서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 이상 사례 보고가 끊이지 않았으나 식약처는 “백수오 탓이라고 추정하기 어렵다”며 무시해 왔다. 그러다 소비자원이 ‘가짜 백수오(이엽우피소)’ 실태를 내놓자 마지못해 전수조사에 나섰다.

 과정이 이렇다 보니 조사 결과도 기대 이하였다. 207개 백수오 제품 중 10개(4.8%)만 이엽우피소가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157개는 확인 불가였다. 전수조사라는 말이 무색하다. 백수오 제조 과정에서 열을 가할 때 DNA가 파괴돼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원료를 찾아서 확인하면 된다. 이마저도 26% 정도밖에 수거하지 못했다. 건강기능식품 정책 자체가 허술하다 보니 원료 이력 관리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건강기능식품 제도가 도입된 지 11년이 됐건만 지금까지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를 일이다.

 식약처는 이엽우피소의 안전성 여부를 두고서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한 달여 전 “이엽우피소가 가짜 백수오인 것은 맞지만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한의사협회 등에서 “간 독성을 일으킨다”고 반박하자 이번에는 독성시험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 시험이 2년 걸린다고 한다. 그때까지 혼란은 어쩌란 말인가. 원칙적으로는 독성시험이 먼저이고 제품 평가가 뒤따라 가야 하는데, 이왕 순서가 바뀐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2년 후에 결과가 나온다니 어이가 없다.

 가짜 백수오 파동을 처음 일으킨 내츄럴엔도텍이라는 회사 제품을 이번에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또 백세주 원료에서 이엽우피소가 나왔으니 완제품 판매 중지는 불가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완제품에서 전혀 나오지 않았는데 판매 중지까지 하는 게 맞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고령인구가 늘면서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한 번 기능성을 인정해주면 그만인 현행 제도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원료에서부터 완제품 생산, 사후 관리까지 촘촘히 대책을 짜야 한다. 기능성 인정 요건도 지금보다 까다롭게 할 필요가 있다. 질병발생위험 감소 기능과 생리활성 기능 1등급은 유지하되 2, 3등급은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혼란의 진원지가 돼버린 식약처가 먼저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