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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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유엔인권위 회의에서 북한 인권 관련 결의안의 표결에 기권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우리의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을 설명한 뒤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투표 자체는 기권할 것임을 미리 발언을 통해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 간 신뢰 구축을 조화롭게 추진해야 하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정부의 조용한 외교전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 정부가 북한 인권 결의안에 기권한다는 것은 한국이 북한의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과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

대북 인권 결의안이 45개국의 공동 제안으로 마련된 점이 상징하듯 북한 인권은 이미 전 세계적 관심사로 부각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도 이제는 북한과의 신뢰 구축 및 평화 공존의 정책과 별개로 인권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또한 인권 개선에 대한 분명한 원칙과 요구를 북한에 제시해 북한 주민 인권 개선안이 결국 북한 체제에도 유리할 것임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이 인권 상황을 개선한다면 우리와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협력도 더욱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부가 이번에 정한 '입장 표명 후 투표 기권'이라는 방침은 투표 과정에 아예 불참했던 재작년과 비교하면 진전된 입장이다. 또한 "우리 정부는 북한 당국이 자국 인권 보호 기준을 국제 수준에 맞게 개선할 것을 희망해 왔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했다. 그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는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분명한 입장 표명 방침은 나름대로 진일보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입장 표명은 누가 봐도 떳떳하지 못하다. 대북 전술전략을 떠나 인권 문제는 천부적인 권리요, 북한 주민 개개인의 삶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국제사회와 연대해 북한 주민 삶의 질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결의안에 적극 찬성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