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생색만 낸 데이터 중심 요금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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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호 31면

매달 8만원 가량을 스마트폰 요금으로 쓰고 있는 대학생 김용조씨는 며칠 전 새로 출시된 ‘데이터 중심 요금제’에 가입했다가 하루 만에 기존 요금제로 되돌아갔다. 약정 할인을 받지 못하고 가족 할인 혜택이 줄어드는 것을 감안해 계산해보니 오히려 요금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3사가 새롭게 선보인 데이터 중심 요금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통신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달 초 가장 먼저 포문을 연 KT의 경우 새 요금제 가입자가 25만 명을 넘어섰다. SK텔레콤은 출시 첫날에만 15만 명이 이 요금제에 가입했고, LG유플러스도 10만 명이 넘는 가입자가 새 요금제로 바꿨다. 통신사들은 ‘고객 혜택을 위한 야심작’ ‘ICT 생태계 발전에 기여하는 혁신’이라고 표현하며 자화자찬에 한창이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새로운 요금제로 혜택을 볼 수 있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다. 우선 1~2년간 통신사를 옮기지 않는 조건으로 적용되던 약정 할인이 데이터 중심 요금제에서는 사라졌다. 가족들의 이동통신 가입기간을 합산해 제공하던 할인 혜택도 축소됐다. 할인율이 최대 50%에서 30%로 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색이 ‘데이터 중심’ 요금제인데도 데이터 제공량에 따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가 많지 않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스마트폰 사용자의 월평균 데이터 이용량은 2.25GB다.

그런데 KT와 LG유플러스는 데이터 제공량이 2~6GB인 요금제는 없다. 때문에 평균적 데이터 이용 고객은 어쩔 수 없이 그 위 단계인 6GB요금제를 선택해야 한다. 고객들의 데이터 이용 패턴과는 동떨어진 요금제인 셈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음성통화는 무제한으로 제공하면서 데이터량은 적게 주는 이번 요금제를 두고 ‘안 팔리는 물건을 끼워주고 잘 팔리는 물건값은 올린 셈’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이번 요금제 출시에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단통법 시행에도 가계 통신비가 절감되기는커녕 오히려 단말기 구입 부담이 늘었다는 소비자 불만 때문에 기업들의 팔을 비틀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통신사는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출시하면서 정교하게 요금 구간을 나누지 않아 정작 데이터를 많이 쓰는 소비자에겐 유용하지 않은 요금제를 내놨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인해 가계 통신비가 연간 1조600억원가량 절감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데이터 중심 요금제 출시로 정부와 통신사의 생색내기는 성공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그토록 원하는 요금 절감 효과가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소비자는 언제쯤 통신사의 ‘호갱(어수룩해 속이기 좋은 손님을 뜻하는 속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김경미 경제부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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