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에세이] "사회통합 교훈 배우자" 미테랑 추모 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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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없는 거리에서 태어나, 지저분한 환경에 둘러싸여, 회색빛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과연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1990년 고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소외계층을 포용해야 한다며 이렇게 연설했다. 그로부터 15년, 프랑스는 사회통합에 실패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지난해 10월 파리 근교 슬럼에서 시작된 무슬림 청소년들의 소요 사태로 1만여 대의 차량이 불탔다. 미테랑의 10주기(1월 8일)를 맞은 프랑스에서 다시 미테랑 바람이 불고 있다.

여론조사기관(CSA)의 설문 결과 프랑스 사람은 제5공화국의 역대 대통령 중 미테랑을 최고로 꼽았다. 고인의 고향 자르나크에서 열린 추모행사엔 수백 명의 '미테랑디'(미테랑의 정치동지)들이 모였다. 고인이 시장으로 일했던 부르고뉴 지방의 샤토 시농, 그의 별장이 있던 남서부 라셰, 파리의 사회당사 등에도 추모 인파가 모였다. 20여 종의 미테랑 관련 책이 서점가 베스트셀러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미테랑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엇갈린다. 고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의 이상을 가장 잘 구현한 인물"로 칭송한다. 그는 국민의 가슴에 꿈을 심어준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사회당의 자크 랑 의원은 9일 고인을 추모하는 글에서 "미테랑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해주었다"고 기렸다. 미테랑은 사회주의자이면서도 프랑스의 국익을 위해서는 드골만큼 보수적인 드골주의자였다.

당파를 초월한 사랑을 받는 비결이다. 물론 고인을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좌파 철학에 따라 사회복지를 확충하는 과정에서 "국가 재정을 거덜냈다"는 비판을 받는다. 미테랑 재임 중 공공부채는 1100억 유로에서 6578억 유로로 폭증했다.

공과를 떠나 소요 사태를 겪은 프랑스에서 미테랑 추모 열기가 뜨거운 것은 그의 사회통합 정신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사정은 안 좋은데 이민자가 계속 늘면서 프랑스의 톨레랑스(관용)가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프랑스인들도 절감하는 듯하다.

박경덕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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