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나이 74세, 인형극 봉사 9년 … 어린이집·양로원에 웃음 전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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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인형극단 ‘누림’의 단원들. ‘안녕, 고래야!’를 연습하는 중이다. [사진 울산북구 노인복지관]

1945년 울산에서 1남5녀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는 장사를 하던 아버지 덕에 부족함 없이 자랐다. 오빠 소개로 18세에 결혼했다. 남편의 집은 조상 제사를 지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먹고 살기 위해 강원·대구·부산과 울릉도 등을 전전하며 온갖 일을 다하다 울산에 정착했다. 남편이 사업을 하다 빚을 져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2년간 사우디에서 일했고, 자신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3남1녀를 키우기 위해 식품공장 등에서 일했다.

  악착같이 산 결과 자녀를 대기업 직원과 군인·교사 등으로 키웠다. 2002년 막내딸을 끝으로 모두 출가도 시켰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 문득 “지금껏 나를 위해 한번이라도 살아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인형극 공연. 9년째 인형극 공연 봉사를 하는 김춘화(70)씨 얘기다.

 김씨가 속한 울산북구노인복지관의 어르신 인형극단 ‘누림’ 단원은 7명. 평균 나이 74세다. 지난 15일 복지관 2층을 찾았을 때 연습이 한창이었다. “조심하세요. 방귀 나가요~, 뿌웅!” 김씨가 익살스런 목소리로 대사를 읊었다. 단원들도 목소리를 조절하거나 표정을 바꿔가며 상황에 맞게 대사를 익혔다.

 인형극 제목은 ‘방귀쟁이 며느리’. 연습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2시간가량 한다. 2007년 10월부터 창단 멤버로 활동한 김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다. “주인공을 맡다 보니 열심히 안 할 수 없잖아?” 김씨가 활짝 웃으며 한 말이다. 그의 옆에서 남편 정일용(79)씨가 빙그레 웃었다. 그도 극단의 창단 멤버다. 김씨는 “남은 인생 우리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봉사를 해보자며 부부가 의기투합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처음 무대에 섰을 때 가슴이 뛰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연극이 끝나고 유치원생 등 관객의 박수 소리가 크게 울릴 때면 가슴이 뿌듯했다”고 자랑했다.

 누림은 매달 한 차례 어린이집과 양로원 등을 찾아 공연한다. 지난달까지 탈 인형극 ‘미운 아기오리’와 ‘늑대가 말하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등 총 104차례를 공연했다. 2010년 부산국제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전국 대회에서 4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작품 구상부터 목소리 녹음, 공연 배경 만들기까지 모두 단원들의 몫이다. 극단 총감독인 손동택(40) 토마토 소극장 대표는 “어르신들이 인형극 경험이 없어 처음에는 대사 한 줄 제대로 읽기 어려웠지만 이젠 프로 못지 않은 실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나이가 중요한가요?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지금입니다.”

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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