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이 이땅의 희망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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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우영(사진)이란 시인이 있었다. 1960년 전북 임실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많은 이들은 1990년을 전후한 즈음 서울 신촌 한 허름한 사무실에서의 그를 기억한다. 월간지 '노동해방문학' 편집과 제작을 맡아 숱한 밤 샜던 그때의 시인은 말수가 적었다. 눈은 맑았고 그저 묵묵했다.

정우영이란 시인이 있다. 오늘 시인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팀에 있다. 거기서 그는 각종 문학행사와 문예지 지원 사업을 맡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번째 시집 '집이 떠나갔다'(창비)을 발표했다. 업무에 치여 한동안 시에 소홀했는 줄 알았다. 말 수 없는 건 여전하다.

시인은, 그러니까, 변해 있었다. "분노보다는 위로에 더 눈길이 간다"는 시인의 고백에 수긍이 간다. 이를 테면 이런 경우다. '사람만이 이땅의 희망인가/사람의 마음만이 세상의 중심인가/그렇다면 세상의 변두리에서 오히려 중심이 되는/저 모진 생명들은 다 무엇인가.'('사람만이 희망인가'부분)에서 시인은, 한때 노동문학의 신화로 불렸던 박노해의 대표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비튼다.

과거 민중시 계열의 시인들이 생태시로 돌아선 예가 여기서도 발견된다. 하나 그 이상의 의지가 읽힌다고 해야 보다 옳을 것이다. 대표적인 증거가 시'시인전(詩人傳)'이다. '그는 늘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자 했으나 나오는 말은 언제나 불평뿐이었다.…그의 마음속으로 홀연히 까치가 한 마리 날아들었다.…말은 수많은 봉오리를 맺고는 이내 꽃들을 터뜨렸다.…그는 그제서야 퍼뜩 깨달았다. 본래 말이란 것은 이렇듯 황홀한 꽃이었구나하고.'

감히 전향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시인은 아직도 '이라크에서 포성이 쫓아오던 날부터 갑자기 나는 귀를 잃어버렸다'('달팽이'부분)며 피끓는 소리를 낸다. 하여 "마음이 많이 닳은 것인가. 한동안 에둘러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부끄럽지 만은 않다"고 털어놓은 노동해방문학의 전사의 고백은 여전히 치열하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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