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부국장대우겸 체육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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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림픽을 4년이나 남겨놓고 한국이 이처럼 훌륭한 시설을 완성한데 놀랐다. 또 메인스타디움 개장식이 마치 올림픽 개막식을 연상케 할만큼 잘 짜여졌다. 서울 올림픽의 성공을 확신한다. (「환·안토니오·사마란치」IOC위원장)『그동안 여러 올림픽을 지켜보았지만 잠실스타디움같은시설은 본적이 없다. 한국인의 의지와 집념을 엿볼수 있다. 개장식행사의 진행에도 무리가 없었다고본다. 』 (르리모·네비올로」국제육상경기연맹회장).
지난29일 잠실올림픽 주경기장 개장식에 참석한 세계 스포츠의 리더들은 한결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의례적인 인사일수도 있지만 이시설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자랑거리임에 틀림없다.
올림픽과같은 큰 잔치를 열려면 두말할것 없이 여기에 어울리는 마당이 있어야한다.
더구나 경험이 없는 개발도상국으로서 완벽한 시설을 갖추는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란 두잔치를 앞둔 우리는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 올릭픽조직위는 그동안 일부 공산권국가들의 방해와 비방을 막아내기위한 외교에 오랜 시간을 소비했고 서울시는 시설준비에 골몰해있었으며 체육부나 체육회는 우수선수강화에 집착한 나머지 더 시급한 일들을 해결하는데 미적거리기만 했다.
그것은 바로 대회를 운영하고 경기를 조직하는 맨파워의 양성이다.
이제까지 남들이 해온 일인데 우리라고 부닥치면 못할게 있겠느냐는 생각은 정말로 위험천만하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이러한 타성이 오늘날 우리 사회발전을 가로막고 갖가지 무리를 빚지않았는가.
올림픽이란 거대한 제전의 성패는 시설이 아니라 사람에 달려있다. 아무리 컴퓨터와 유전공학이 세상을 바꾸어놓는다해도 이 사회를 움직이는것은 역시 사람의 두뇌요, 사람의 땅이다. 이제 많은 시설중의 하나, 훌륭한 메인스타디움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올림픽의 성공이 보장되는것은 결코 아니다.
손님칭찬만 듣고 싱글벙글 기뻐하기엔 우리의 허술한점, 모자라는것이 너무나 많다.
세계각국의 귀빈들을 모아놓고 시설자랑을 한 바로 그이튿날 경축행사의 하나인 국제초청마라튼대회에서 일어난 코스이탈사고는 바로 우리의 허점을 드러낸 어이없는 사고였다.
서울의 마라톤코스를 한두군데로 고정시키지 않고 그때마다 멋대로 바꾸는데도 문제가 있다. 한때는 서울종로도심을 관통하는 코스를 구상할만큼 상식밖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곤 했다. 또 어느 한 기관이나 단체가 책임을 지고 일을 맡는것이 아니라 관계기관·단체간의 의견이 엇갈리고 이곳저곳의 간섭을 받다보면 그야말로 배가 산으로 올라갈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계획은 허점투성이가 되고 임원이란 사람들의 책임감도 흐려지게 마련이다.
누가 고의로 그런 해프닝을 벌였겠는가. 또 어떤 한사람의 순간적인 실수로 모든 책임을 돌려버릴수 있겠는가. 그동안 경기전문가들의 교육, 심판요원의 훈련을 소홀히 해온 결과다.
두차례 대행사를 앞둔 한국체육계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경기요원의 수준이 너무 낮다. 그보다 쓸만한 사람이 너무없다고 하는편이 적합한 표현일것같다. 현재의 경기단체임원들은 철저한 아마추어도 아니며 그렇다고 프로도 아니다. 봉사를 하는 입장에서 사명감·의무감이 결여되면 무책임이 남을 뿐이다.『언제든지 그만두면 그만』이라는 그 무책임한 태도가 생리처럼 되어버린것같다.
또 몇명의 임원을 바꾸고 집행부를 개편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임원들의 각오가 되어있지 않을경우엔 악순환을 되풀이할 따름이다.
LA올림픽의 경우를 보면 5만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이 저마다·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헌신적으로 봉사함으로써 대회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작 책임을 져야할 장본인들이 너무 흐리멍덩하다. 완벽을 기해야할 준비는 엉성하기만하다.
한국적인 비조직성·비과학성·비능률성이 바로 문제다.
조그마한 성냥갑하나를 만드는데도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고 능률을 살리는 연구가 따라야한다. 하물며 올림픽과 같은 엄청난 일을 치르려면 벌써부터 요원확보·재교육이 먼저 이루어졌어야한다.
이번에 우리를 놀라게한 마라톤코스 이탈사고 말고도 상부조직의 전문인력, 말단행정의 봉사인력의 절대부족등 적지않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런가하면 업무중복의 마찰등 비능률적인 요소때문에 혼선·차질을 빚기도했다. 이러한 사람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것이 시설확보나 메달대책 보다 더 중요한 숙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그러나 실수를 되풀이 할 수는없다. 오늘의 취약점을 빨리 보완하여 내일에 대비한다면 지금의 실수는 약이 될수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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