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학법 파동 힘으로 해결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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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청와대는 신입생 배정 거부를 헌법적 기본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했다. 비리 조사 등 행정적.사법적 절차로 사학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의 비리를 사학 전체의 문제로 규정하고 감사.수사.임시이사 모집을 무기로 삼아 사학을 윽박지르는 자세는 정도가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그때그때 응당 법에 따라 처리했어야 한다. 그동안 묵인해오다 이제 와서 용납할 수 없다니 진실성을 의심받는다. 말 안 듣는 기업을 손보기 차원에서 세무조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정부 일각에서 사립의 국립화 운운하는 것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오죽하면 교육계엄령이라는 비난이 나오겠는가.

청와대 비서실장 말대로 한국전쟁 와중에도 천막학교를 열어 2세 교육에 차질이 없도록 한 것이 사학의 건학정신이다. 이런 사학들이 학생을 충원하지 않고 본연의 임무인 인재양성을 포기하려는 까닭을 정부는 헤아려야 한다. 사학 측이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제기할 정도로 사학법에 육영 사업을 위축할 개방형 이사제 등 독소 조항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개인 재산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사학법인들이 수두룩한 반면 연간 고작 기백만원을 출연하는 법인도 있는 게 현실이다. 사학의 개별 상황을 구분하지 않은 채 사학법을 일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정부는 사학법 시행령에서 개방형 이사의 재추천 요구권을 사학 측에 보장할 것이라고 한다. 개방형 이사제의 하자를 부분 인정한 것이다. 거듭 촉구하지만 시행령으로 모법을 보완하려 하지 말고 법 재개정을 통해 사학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 사태 해결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