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타이어낀 새트럭 몰고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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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적이 수재물자 인수하던날>
북적의 수재물자수송이 시작된 29일 판문점. 인천여야 북평항은 내외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아침부터 부산한 움직임이었다. 내외취재진 20여명이 몰려 지켜보는 가운데 판문점에는 상오9시30분 북적의 의약품등 47상자가 처음도착, 하역을 시작함으로써 이틀간의 물자수송이 시작됐다.
시민들은 대구무장간첩사건 수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도착한 북적의 수재물자에 착잡한 표정으로 「진정한 화해와 대화」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랐다.
29일 판문점으로 수재물자를 가져온 북적의 백남준등은 상오9시35분쯤「자유의 집」프레스센터에 마련된 임시소에서 조철화 한적사무총장과 만나 인사를 나눈 뒤 대화를 갖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
종총장이 『어제 비가 와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자 백은 『우리쪽에도 새벽4시까지 비가 내렸다』고 대답.
두사람은 70년대초 남북이산가족찾기운동을 위한 회담에 만난일이 있는 구면인히 조총장이 『몇년만입니까』묻자 백은 『12년만입니다.』고 받았는데 조총장은 『좋은 일로 오게 되어 잘되었다』고 인사.
29일 상오북적의 수재울자를 실은 트럭이 통과한 다리는 판문점과 개성을 연결하는 「72다리」로 이다리는 지난 76년 8. 18도끼만행사건의 부산물.
도끼만행사건으로 북한측이 판문점을 왕래하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판문점 제5관망대에서 서북쪽으로 약2백미터 떨어진 사천강위에 시멘트로 72시간만에 급조한 것이다.

<"이산가족 소식이나 들었으면">
수재물자중 제일먼저 쌀을 실은 트럭이 대성동국민학교앞 제2야적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상오11시35분쯤.
짙은 쑥색의 5톤트럭에는 적십자완장을 찬 수송요원1명과 20대 초반의 운전사. 운전보조원등 3명등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검푸른 제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트럭에서는 페인트 냄새가 물씬 풍겨 이번 물자수송을 위해 모두 새로 도색한 것이 분명했고, 타이어도 새것이었으나 「YOKOHAMA」 「BRIDGESTONE」 란 일제상표가 붙어있었다.
하역장에는 평양과 직통전화가 5대씩 설치되어있으나 북한기자들은 기사송고는 하지 않고 주로 평양을 불러 물자수송상황만을 분주하게 보고. 북측 기자들은 처음 방문하는 대성동 마을의 깨끗한 주택들에 대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는 가운데 『사람이 살긴 사는데... 』라고 대화.
북한측 수송요원들은 우리측이 쌀을 사람손으로 직접하역하지 않고 모터로 자동작동되는 컨베이어벨트를 써 야적장에 쌓자 신기한 듯 작업광경을 지켜보았다.
북한 수송요원들은 적십자사여성봉사자들이 음료수와 도시락을 준비했다가 나누어주자 음료수는 『마셨다』며 거절하고 도시락만 받아 차안에 들어가 먹었다.
6. 25의 전세를 뒤엎는 계기가 됐던 상륙작전지인 인천의 많은 실항민들은 북적의 수재물자가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데 대해 남다른 감회를 갖는 표정이었다.
재인 황해도민회장 유청영씨(49) 『우리고양 하여 황해도연백평야에서 쌀이 많이 생산되는데... 쌀은 이렇게 온다는데 고향은 가볼 수 없으니 안타깝고 고향생각이 절실하다』며 『이번을 계기로 이산가족끼리 소식만이라도 전하고 더 나아가서는 왕래까지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북적에서 수송선이 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인천이 38선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는다것은 알지만 막상 북쪽배가 인천항으로 온다니 그 가까움이 더욱 실감난다』고 했다. <판문점=김현일 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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