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가슴처럼 너그러움을 갖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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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빠의 가슴은 넓어서 믿음직하다. 잘 자란 잘못은 모두 덮어진다. 이리저리 뛰다 저지른 실수는 모두 그 속에서 녹아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빠를 믿고 마음 든든히 살아간다.

<자신이 서면 너그러워>
옹졸함은 자신 없다는 징표다. 남의 조그마한 실수를 기다렸다는 듯이 물고 늘어지는 사람은 대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당당하게 남과 겨를 수 없는 사람이 흔히 남의 약점을 잡아 그걸로 남을 헐뜯는 치졸한 짓을 하는 법이다.
너그러움이란 따지고 보면 자신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마음가짐이다.
잔 허물을 트집잡는 옹졸함은 자신 없는 개인만 아니라 떳떳하지 못한 집단이나 불안한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당당하게 내세울 명분과 경륜을 못 갖춘 정당은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도 반대당과 정책대결을 하려하지 않고 반대당 유력인사의 개인적인 흠을 잡아 공격하기도 하고 하찮은 발언의 꼬투리를 잡아 시비하기도 한다.
나라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 있는 나라사이에서는 고차적인 정책협의를 진지하게 다루는 회담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나라사이에서는 회담절차나 의례상의 문제 등이 내용보다 더 시끄럽게 거론된다.

<성숙한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생명은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표출에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의 생각들을 존중하면서 성실한 토론과 이성적 설득을 통하여 타협을 이루어 나가는 정치가 바로 민주주의이고 보면 자유로운 의견의 표출과 진지한 설득노력, 그리고 이성적인 의사수렴태도 등은 민주주의 실천의 가장 원초적인 조건이 된다. 그리고 반대로 독선적인 오만, 다른 의견을 경청하지 않으려는 비 타협의 태도, 설득 아닌 강압의 의사수렴 방법 등은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큰 장애요소가 된다.
후진사회에서 민주주의가 고전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독선적이고 비타협적인 태도를 버릴 수 있을 만큼 자기 신념에 대하여 자신을 가진 성숙한 정치지도자가 적기 때문이다. 지기의 신념을 당당하게 논리적으로 개진하여 이성적인 시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서있지 않기 때문에 반대의사의 표출을 강제로 억압하고 자기 의사를 힘으로 관철하려하는 억지가 난무하게 되고 자연히 정치는 극한적인 투쟁으로, 즉 힘과 힘의 대결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장을 위해서는 식견과 신념을 가진, 국민의 신망을 받을 자신이 있는 정치인들이 출현하여 정치를 이성적 설득의 광장으로 끌고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을 가진 정치인들이어야 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량을 갖게 되고, 이러한 여유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진 정치인들이어야 서로 대화로 정치를 풀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통일 정책>
안목을 넓혀 북한에 대한 우리의 태세를 점검해 보아도 같은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북한은 남이 아니다. 우리민족 사회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북한은 적으로 몰아붙여 몰아내야 할 대상이 될 수 없다. 끈기 있게 설득하여 우리의 품에 안아야할 대상이다. 마치 철이 덜든 어린 동생이 일을 저지르고 대어들고 하는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북한을 대한 대도는 그러하지 못했다.
큰형이나 아버지처럼 넓은 가슴을 가지고 북한을 감싸 안으려는 태도보다는 북한을 몰아 붙이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도밖에 가질 수 없었던 이유로는 우리의 자신감 부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우리보다 우세한 군사력을 갖추고 틈만 있으면 우리를 무력으로 승복시키려 해왔다. 또 갖은 방법을 다 써서 우리를 괴롭혀왔다. 때로는 테러를 감행했고, 때로는 거짓으로 우리를 국제사회에서 모함해 왔다. 이러한 북한의 도전에 대하여 우리로서는 일차적으로 방어태세를 갖추지 않을 수 없었고 북한을 약화시켜 무모한 도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주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비방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도록 우리의 우방의 대북 접촉을 차단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서서히 북한에 대하여 모든 점에서 자신을 가질 수 있는 지위에 도달해가고 있다.

<북한을 안는 가슴>
한마디로 이제부터는 북한을 우리 품에 안으려는 너그러움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운 것은 소수의 북한공산지배 집단이지 북한 동포들은 아니지 아니한가? 북한을 우리의 체제 속에 융화시켜버리는 통일이 우리의 궁극의 목표이겠지만 우선 그 이상이 실현될 때까지 우리의 틀을 조금 넓혀 북한까지 감쌀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야한다.
북한을 고립시키는 정책에서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나「승자의 아량」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북한을 포용한다는 기본자세가 국민의 합의로 결정된다면 우선 우리는 북한이 남이 아닌 우리의 일부임을 세상에 명백하게 선언해야 한다. 북한 거주동포에 대해서는 국민에 준 하는 대우를 해줄 것을 선언하고, 북한주민의 생활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면 우리가 자진해서 성취하도록 거들어 주어야 한다.
북한에 무기를 공급하는 외국이 있으면 이를 막아야하나 북한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경제 거래라면 우리가 앞장서서 도와주어야 한다.
지난 8월20일에 있었던 대통령의 대북한 원조제의는 이런 새로운 자세의 표현이란 점에서 좋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거짓선동 이길 수 있다>
자신을 가질 수 없으면 너그러울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을 가지고도 너그럽지 못하다면 그것은 옹졸한 것이다. 지난 40년간 우리 국민 모두가 노력한 결과로 우리도 스스로의 정치력고을 믿어도 좋을 만큼의 자신을 갖게되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의 거짓 선동 정도는 충분히 이겨 나갈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흐뭇한 일이다.
이제는 새로 얻은 자신을 바탕으로 이에 걸 맞는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을 때가 되었다.
나라안으로는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하여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표출을 격려하고 여러 가지 의견들을 성실히 경청할 자세를 갖추어야 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의 옹졸한 대결을 지양하고 과감하게 북한을 포용해 나가는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우리의 가슴을 활짝 펴 모든 갈등이 이 속에서 삭여지도록 하자. 【이상만(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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