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정국이 뜨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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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선거철이면 으례 정계의 은밀한 관심사가 되는 문제중의 하나는 선거구나 공천을 놓고 여야간에 차원 높은 정치협조가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타당 당수 지역구에 대한 예우나 공명선거를 위한 신사적 (?) 묵계 같은 것이 여야간에 시도될 개연성은 충분히 있지만 금년에는 아직 이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정치협조가 시도될 수 있는 기회라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시 한번 있을 것으로 보이는 선거법 협상자리를 생각할 수 있다.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3당 대표가 단계적 타결이라는 기묘한 방식으로 선거법을 일단 개정했지만 미진한 부분으로 남겨뒀던 선거구 조정문제를 놓고 국민당 쪽에서는 협상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해금자의 입당으로 인한 과열 공천경합의 완화라든가 지역구에서 강적을 피해보자는 등의 이유로 민한당 의원들 중에서도 분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개인적 이해에 얽힌 개별적인 주장이 당의 강력한 요구로 집약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현재의 국회의원 숫자를 절대로 늘릴 수 없다는 민정당의 방침은 요지부동이고 민한당과 국민당의 속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차피 결말이 빤한 선거법 협상은 있으나 마나 하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다만 3당 대표의 선거구 문제 재론이라는 언약 때문에 선거법 협상 재개를 위한 대표회담 또는 사무총장 회담 등 고위 회담이 한 두 차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이미 끝난 선거법협상의 종결을 공식 선언하는 절차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관측이다.
3당 선거법 협상에서 사무총장 자격으로 협상시작의 테이프를 끊었고 대표위원으로서 협상을 끝냈던 권익현 민정당 대표 위원은 『선거법을 두고 아직 할 얘기가 남아 있느냐』고 반문하는 형편이다.
선거법 협상 과정에서 사회주의계 정당의 보호책이 고려되거나 분구·증구에 따른 정치적 흥정이 있으리라 던 가능성은 이로써 배제됐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같은 정치적 수요에 대한 해결 방책마저 깡그리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거는 쪽은 아직도 있는 듯하다.
민정당 측이 가장 고민하는 측면도 대외적인 필요성에 따라 유일한 민주 사회주의 정당인 신정 사회당의 간판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
지난 11대 선거에서 신사당의 고정훈 총재가 출마한 서울 강남구에는 민한당과 국민당이 공천자를 내지 않아 고씨의 당선 여건을 제공해줌으로써 대표적인 정책지구로 꼽혔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민한당이 후보자를 내지 않을 수는 없다는 사정을 민정당 측도 이해하고 있다.
유치송 민한당 총재는『이번에도 강남구에 후보자를 내지 않았다가는 민한당이 정말30∼40석의 정당으로 위축될 것』이라고 미리부터 예방 선을 치고 있다.
따라서 지역구 관리보다는 11대 선거에서와 같은「영험」을 바라고 있는 고씨를 민정당에서는 안타까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민정당 측도 이제는『우리도 바쁜 판에 신사당 유지니 하는데 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한 야당측과의 「대화」가능성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고 있다.
신사당 문제는 까다로운 특수한 예외적 상황이라 하겠고 이 보다는 △상대 후보에 대한기피나 예우 △당 내외의 역학관계 또는 △득표율·지역구사정·당락 가능성과 관련한 정책지구 설정은 선거때마다 있어왔고 이로 인해 정당간의 뒷거래 소문이 나돌게 마련이다. 특정후보의 낙선작전·특정인의 지원작전은 선거의 한 전략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선거 때 김종철 국민당 총재가 출마할 예정이었던 천안-아산에는 민한당이 투표일을 겨우 한 달도 안 남기고 후보 공천을 했는가 하면 당시 민한당 창당의 주역이었던 신상우 사무총장 (당시) 이 장성만 의원 (민정) 과 함께 무투표 당선 됐던 부산 북구 등이 정책지구의 냄새를 짙게 풍겼고 여러 지역에서 상대방 후보의 표를 분산시키는 인물들의 정책적 입후보가 눈에 띄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특정 야당 인사를 낙선시키기 위한 정책지구가 몇 군데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재벌2세의 무소속 출마 설을 그런 눈으로 보는 측도있다. 현대의 정몽준씨 (울산), 대우의 금관중씨 (제주)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야당가에서는 야당후보를 탈락시키고 준여무 소속권을 형성하려는 작전이라고 몰아 붙이고 있다.
해금은 특정 지구의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부·여당의 가장 큰 수단이 될 수 있다.
민한당 주변에서는 한때 임재정 (광주동-북) 김병오 (서울 구로) 의원 등이 원내 과격발언으로 공천을 못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창당 때 줄타기로 들어왔다는 몇몇 의원들은 공천 경합 중에도 은근히 기대는 곳이 있다는 인상을 감추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 당직자는『이번 공천 과정에서 여러 채널을 통한 외부 입김에 어떻게 버티느냐에 민한당의 장래가 달려있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민한당이 여전히 피조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고 신당 추진자들이 이점을 최대 약점으로 보고 집중공격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각 당의 공천 윤곽이 드러나면 이해의 충돌이 일게 마련이고 이를 둘러싼 정치흥정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흥정은 선거 전략적인 부차적인 문제이고 오히려 기존 정치권의 보호라든가 야당 세의 둔화, 여당의 대도시 전략과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는 상층권의 기류가 사실은 더 관심거리가 될 것이다.<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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