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안정에 찬물 끼얹어 다시 긴장고조…중동 정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자동차폭탄의 해」로 일컬어졌던 83년을 넘기면서 그 동안 잠잠하던 레바논의 폭발물 테러사건이 다시 발생, 레바논 정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번 폭발사건은 레바논이 9년에 걸친 내전 끝에 안정의 실마리를 풀어 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미군 등 서방측의 군대가 모두 철수한 상황에서 터진 것이어서 더 큰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건직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회교성전기구가 『레바논 안에 한사람의 미국인도 남겨 놓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사건배후는 반미, 혹은 반 이스라엘 조직으로 짐작되고 있을 뿐이다.
중동분석가들 가운데는 얼마 전 미국이 유엔에서 남부 레바논에 주둔중인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위한 결의안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데 대한 보복으로 보는 측도 있다.
현재 레바논 사태에서 지금까지 미결로 남아있는 유일한 문제는 82년6월 이후남부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는 이스라엘 군 및 레바논 동부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시리아군의 철수.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에 「페레스」신정부가 들어선 후 이 문제도 조기해결의 기미가 없는 등 레바논 사태는 밝은 전망을 보여왔다.
더욱이 「카라미」레바논 수상정부가 오랜 노력 끝에 지난17일 제3차 레바논 민족화합회의를 열어 그동안 기독교·회교 종파간의 갈등을 빚어온 권력배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0인 개헌위원회를 구성키로 합의함으로써 안정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번 폭발사건이 어떤 이유에서 일어났건 이러한 안정추세의 레바논 사태에 찬물을 끼얹는다면 중동평화의 길이 또다시 멀어질 것은 틀림없다.
특히 미국의 보복과 이스라엘의 태도여하에 따라 레바논 사태는 급전직하될 가능성도 있다.
만약 중동지역에 회교혁명수출을 꾸준히 기도해 온 이란이 이번 사건의 배후라면 사태는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레바논 안에는 이란의 회교 이념을 추종하는 헤즈발라(신의 정당)라는 과격 시아파그룹이 있다. 이 단체는 무장시아파그룹인 아말운동의 분파로 그 동안 자살특공대를 조직, 폭탄테러사건을 주도한 가장 급진적인 행동원칙을 갖고 있는 무장게릴라 단체다.
회교 지하드기구가 헤즈발라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한 유령 단체이고 이번 사건 같은 폭발사건을 계속 일으킨다면 레바논의 평화정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 요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