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넋 서린 소리, CD 8장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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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요 헤요…에야 에야……그만 놓고 에야 얼씨구나 에야, 이여차 허야."

음악이 아니다. 읊조림이다. 한숨이다. 들에 부는 바람소리 같기도 하다. 40년 전 이 땅에 산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땀 훔치며 목이 메어 한 자락을 넘긴다. 1968년 8월 경남 남해 설천면 모천리에서 나무를 베어 이동할 때 부르던 '나무 메고 가는 소리'다. 어깨에 맨 목도가 살을 파고들 때 절로 흘러나오던 그 소리엔 웅숭깊은 설움이 배어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구전민요다. 입에서 입으로, 몸에서 몸으로 흘러내리던 노동요는 생활 속에서 우러난 진국 예술이 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가 펴낸 '경상도 민요'에는 이런 소리 139곡이 담겨 있다. 67~68년 당시 문화재관리국이 경상도 각 지역에서 채록해 보관해온 희귀 자료를 8장의 CD로 내놨다. 민요 전문 PD로 이름난 최상일씨가 채집해 기록한 '한국민요대전' 보다 20년 이상 햇수가 올라간다. 그만큼 드물고 진귀한 우리 소리다.

이번에 공개된 '경상도 민요'는 크게 네 종류로 나뉜다. '모심는 소리' '삼 삼는 소리' 같은 노동요, '시집살이 노래' '시앗본 여자' 처럼 고단한 현실을 잊을 양으로 부르는 신세타령, '놋다리밟기 소리' '진주 줄싸움'류의 놀이 노래, '앞니 빠진 아이 놀리는 노래' '잠자리 잡는 노래' 등의 동요다.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사설도 씹을수록 멋이 우러나지만 더 좋은 건 일종의 잡음이다. 소리 사이사이에 끼어든 숨찬 호흡, 쑥스러운 듯 터지는 웃음, 두런두런 얘기가 세월을 뛰어 넘어 조상의 인생을 우리 곁으로 모셔온다.

"가슴 하루 모두 모두 못 묻는 것이 밤마다 밤마다 용꿈만 꾼다, 에헤에에야 어에에야 어허에야 에화나지헐사 내 내 사랑아."(뱃노래)

"시집 가던 삼일만에 시어마니 거동보소, 참깨 닷말 들깨 닷말 두 닷말을 볶으랴요."(시집살이노래)

"잠아 잠아 오지마라, 이 삼 삼아 옷 해 입고 무주산천이 구경가자."(삼 삼는 소리)

이름없는 아낙네가 부르는 소리는 거칠되 곰살맞고 밋밋하되 질리지 않는다. 고된 노동과 여성의 힘든 삶을 이겨내려는 마음이 노래에 절로 묻어난다. "얼씨구 절시구 아니놀지도 못하겟고 아니 살지도 못하리라."(부녀노래)

조상의 넋이 서린 이 소리는 국립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www.nrich.go.kr)에서도 들어볼 수 있다. 042-860-9231.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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