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에서 솟는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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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허, 이 무슨 이치인고. 붉고 둥근 해가 서쪽에서 떠오르네』
이성철 종정(조계종)의 법어는 알듯 모를 듯하다. 31일 종회에 내린 그의 법언이다.
3년 전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로 세상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었다. 때마침 산하가 얼어붙은 엄동설한인데, 이무슨 이치인가, 궁금하기만 했다.
원래 법어란 법조문처럼 누구나 뜻을 새길수 있는 문구는 아니다. 그것은 깊은 각성속에서 한줄기 빛처럼 솟아오른 말이다. 누구다 얼른 그 뜻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저 짐작컨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은 자연의 순리를 설법한 것이 아닐까, 속인들은 어림했을 뿐이다.
신앙의 세계엔 그런 유현함이 있어야 할 것도 같다.
성철스님의 법어속에서 해가 솟는 「서쪽」은 분명 지도위의 서쪽은 아닐 것이다.
불자에선 극락세계를 서방정토라고도 한다. 아미타경엔 『…여기서서쪽으로 10만억 국토를 지나서 한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극락이라고 한다』고 했다. 바로 서방정토다. 아미타불은 이곳에서 성불했다.
그 극락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르니 그 얼마나 찬란할 것인가.
성철 종정은 『곳곳마다 광명이요…기는 짐승, 나는 새들 태평을 노래한다』고도 했다.
여기의 「태평」은 필경 오늘의 불교계를 이른 말 같다. 그동안 온갖 속취를 다 풍기던 불교계의 분쟁이 비로소 평정되고 정상을 찾게된 것은 정말 『서쪽에서 해가 뜨는 것』만큼이나 반가운 일이다.
아직은 불교계가 짐승과 새가 노래하는 목가적인 분위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제 분쟁은 그만!』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전통종교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 또한 그렇다.
사람의 세계에서 신앙의 힘만큼 큰 것은 없다. 그것은 정신의 에너지도 되고, 도덕의 힘도 된다. 우리나라 불교는 그런 에너지를 하루 빨리 되찾아야 한다.
아니, 이것은 모든 종교에 대한 기대다. 종교가 사회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불행은 없다.
『붉은 해가 서쪽에서 떠오른다』는 법어가 행여 모든 신앙인에 대한복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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