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서 뜨거워진 한·중공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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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로스엔젤레스 올림픽이 끝나던 날인 지난12일 한국·중공의 두남녀 농구선수가 서로 좋아하면서도 국교가 없어 애틋한 마음을 안은채 작별을 고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두사람은 한국여자농구의 센터 문경자(19·1m82cm)와 중공남자농구의 센터 「왕·하이브」(왕해피·20·2m6cm).

<폐막식 직전에 만나>
이날밤 메모리얼 콜리시엄에서 페막식이 벌어지고 각국선수들 입장이있기 40여분전 선수대기장소인 복싱경기장 스포츠 아레나 실내체육관에는 문·왕 두 선수가 3명의 통역을 가운데 두고 정겨운 대화를 나누어 주위의 시선을 모았다.
문선수의 통역을 맡았던 메모리얼 콜리시엄의 한국선수담당 자원봉사자겸 통역이었던 「수지·오」씨(재미동포·LA시 교육구청 장학사)는『두 선수가 서로 「좋아한다」며 즐거워하던 모습은 오랜 교육자생활에서 겪었던 그 어떤때보다 흐뭇한 정경이었다』면서 『그러나 한국과 중공이 국교가 없어 두사람 모두가 서로 얘기도 속시원히 나누지 못하고 또다시 만날 기약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헤어지는 것을 보고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당시의 애틋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신도 나를 좋아하나>
「수지·오」씨는 이날 스포츠 아레나에서 폐막식 입장선수들의 안내를 맡고 있던중 키가 크고 미남인 왕선수가 남녀 각각 1명씩 2명의 중국인통역을 대동하고 찾아와 『한국의 문선수와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통역을 부탁한다』고 요총, 통역을 해주었다고 말했다.
통역은 문선수가 오씨에게 한국어로 얘기하면 오씨가 이를 중국인통역에게 영어로 전하고 중국인통역은 이를 다시 중국어로 왕선수에게 전달하는 식의 3중 통역으로 선수입장 직전까지 40여분간 계속됐다.
「수지·오」씨는 두 사람이 대화 도중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만큼 당신도 나를 좋아하는가』라고 통역을 3번씩이나 부탁해와 매번 일일이 통역해 주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두사람의 대화를 통해 문·왕선수는 지난82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벌어진 제7회 아시아 주니어 농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알게돼 홍콩을 통해 편지로 우정을 나누다 지난4월 서울 주니어아시아선수권대회에 왕선수가 다시 중공대표팀으로 출전, 두번째 해후를 하게 됐으며 LA올림픽 참가때까지 계속 편지를 교환했던것 같다고 전했다.

<문 "선물 아주 고맙다">
왕이 중국어로 쓴 편지를 홍콩을 통해 문의 고향인 수원으로 보내면 문은 수원에서 중국어를 아는 사람에게 부탁, 번역해 읽었다고 말했다.
오씨에 따르면 왕이 『올림픽 경기중엔 바빠서 만나지 못해 안타까왔다. 지난번 USC(남가주대) 선수촌으로 당신을 찾아갔었는데 마침 훈련으로 외출중이어서 가져간 선물을 맡겨두고 돌아갔는데 그 물건을 받았느냐』고 묻자 문은 『잘 받았다. 아주 고맙다』고 대답했다. 왕은 또『한국여자농구가 이번에 은메달을 따 축하한다. 한국선수들이 참 좋은 경기를 보여주었다. 다음번에 중공과 다시 싸워도 한국이 이길 것 같다』고 말하자 문은 『고맙다』고 대답하고 『오는 10월 중공 상해에서 열리는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때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문은 『오는 10월 상해에서 못만나게 되면 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 올림픽에서 꼭 만나자』고 당부했다.
왕은 『86·88년에 꼭 서울로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눈물 글썽이며 헤어져>
두사람의 대화를 통역하던 오씨가 왕의 여유있고 자유로운 태도와 말씨를 보고 『중공에서도 자유로운 사랑이 가능한가』라고 묻자 왕은 『전에는 자유로운 사랑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두 선수의 대화 도중 「수지·오」씨는 각각 두 사람의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어 주기도했다.
이어 폐막식 선수입장이 시작되자 두 선수는 못내 아쉬운 듯 눈물을 글썽이며 작별했다.<로스엔젤레스=진창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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