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신년기획중산층을되살리자] 中. "중산층 중심 정책 펼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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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아침 서울 광교 인근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의 행렬. 외환위기 후 '화이트칼라'는 급속히 무너졌다. 하지만 정부도, 사회도, 정치권도 이들을 되살리는 일에 소홀했다. 변선구 기자

"먹고살기 정말 빠듯합니다."

기업은행 김기섭(46) 상품개발팀장은 2일 "새해엔 정치권이 중산층의 실생활에도 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소망을 밝혔다. 중산층은 기득권 계층도 아닌데 정치권도, 정부도, 사회도 외면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말로만 중산층을 위했을 뿐 중산층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17년간 은행에서 근속한 덕에 경기도 일산 신도시 인근에 32평형 아파트를 장만했다. 직장에서도 잘나간다. '독도는 우리 땅' 통장과 '고구려 지킴이', '마라톤' 통장 등을 잇따라 개발해 기업은행 예금 유치에 일등 공신이 됐다. 덕분에 연봉도 700만원가량 올랐다.

그러나 김 팀장은 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혼자 벌어서 중학생이 되는 아들과 초등학생 딸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딸이 '내 방'을 달라고 졸라도 선뜻 집을 넓혀갈 수도 없다. 저축으로는 그동안 뛴 집값을 따라잡기가 벅차기 때문이다.

직장이 있어도 안심할 수 없다. 그는 "각기 다른 은행에 입사했던 동기들이 외환위기 직후 40세도 안 돼 명퇴하는 걸 보니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토요일에도 짬을 내 MBA 과정에 다니고 있다. 제2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외환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중산층 중에서도 '화이트칼라'다. 전직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무더기 실직을 당했다. 본지가 경영자총협회.산업인력공단.DBM 코리아 등 전직 알선기관에 의뢰해 2003년 이후 구직 신청을 한 147명의 전 직업을 조사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체의 72.8%가 사무직.기술직 등 화이트칼라였다. '삼팔선(38세도 선선히 퇴직을 받아들인다),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남아있으면 도둑)'란 유행어는 화이트칼라의 불안 심리를 바로 보여준다.

그러나 정치권도, 정부도, 사회도 빈곤층 구제에만 신경썼을 뿐 중산층 대책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김 팀장은 "정부가 많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중산층은 피부로 느낄 수 없었다"며 "중산층의 부담을 덜어줄 교육.부동산 대책이 가장 아쉽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이제는 빈곤층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중산층을 정치.경제.사회의 중심에 놓을 때라고 주문한다. 우선 정치권부터 빈곤층의 박탈감에 기대는 '편 가르기' 정치를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산층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선 공교육이 살아나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이제는 공급 대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8.31 부동산 대책이 입법화된 만큼 재건축에 대한 규제도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복지 대책만으론 양극화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고언도 제기됐다. 일자리 늘리기가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봉급생활자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올해 정부의 숙제로 남는다. 번 만큼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세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매년 자영업자의 세금 탈루를 바로잡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럴 때마다 봉급생활자들은 '혹시나'하고 기대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 특별취재팀=경제부 정경민 차장(팀장).김종윤.허귀식.김원배.김준술 기자, 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정책사회부 정철근 기자, 산업부 윤창희 기자, 사건사회부 손해용 기자, 사진부 박종근 기자

<economan@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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