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 토론방] 대통령 현충일 訪日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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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무리 실익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국가간에 최소한의 명분이나 자존심마저 굽혀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일본이 한국민의 정서를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방일은 실익 외교라기보다 민족 정기를 손상시키는 행위다.

▶옛말에 '게으른 나무꾼 정월 초하루에 나무하러 간다'더니 새털같이 많은 날을 두고 하필 현충일로 택일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전 국민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묵념하고 있을 때 대통령이 일본의 국왕과 술잔을 들고 있을 수 있나.

▶국민 정서를 무시하면서 굳이 그 날 가야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가. 현충일 하루 전이나 뒤로 바꾼다고 해서 당장 큰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국민 감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하다못해 건강상의 이유를 들더라도 일정을 조정하는 게 좋겠다.

▶실리 외교를 위해 형식과 명분이 중요하지 않다고들 하지만 국가간 외교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무급의 회담에서는 형식을 과감히 버릴 수도 있지만 국가원수의 방문은 그에 걸맞은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 정상 간의 만남은 상징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외교 담당자들이 이번 방일 일정을 짤 때 우리의 의견을 제시하고 협의했는지 의심스럽다.

▶정상의 외국 방문은 갑자기 짜는 게 아니다. 사전에 양국의 외교 채널을 통해 날짜와 논의할 관심사는 물론 스케줄 하나하나 세심하게 합의하는 게 상식이다. 청와대의 참모와 외무 실무자들에게 문제가 있다.

▶민족의 자존심을 무시한 이번 방일을 용납할 수 없다. 국민의 자존심을 팔아 실익을 얻겠다는 건가. 현충일의 방일은 과거사에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묵시적인 용납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