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봉쇄된 대장선, 바람 앞에 등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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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준결승 1국>
○·박정환 9단 ●·탕웨이싱 9단

제13보(152~165)=좌상귀 153, 154의 교환. 탄샤오의 느긋한 손길이 승자의 부채질 같다. 155로 다가선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이 겹친다. 최후의 결전을 기다리는 이순신에게 다가가는 검은 말, 검은 투구의 적장 구루지마 같다.

 156은 전력을 다해 부딪쳐가는 판옥선이다. 부자 몸조심하듯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적을 도발해야 한다.

 발끈, 젖혀온 157의 검은 파도에 휘청, 158로 밀려난다. 기다렸다는 듯 몰려드는 159, 163, 65의 검은 함대. 수순 중 161은 선수의 의미가 있으나 외면했다. 흑이 빳빳하게 선 이유가 있으나 거길 돌아볼 여유가 없다.

 이제 그곳은 ‘참고도’ 흑1 이하 5까지 1선으로 건너는 끝내기의 ‘뒷맛’이 남았다(7…▲). 알지만 모른 척했다. 어차피 끝내기로 다툴 미세한 국면이 아니다. 이미 집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로 벌어졌다.

 162, 164는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깎는 전술이다. 중앙에 웅크린 검은 함대를 분쇄하면 기적 같은 승리의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163, 165로 봉쇄된 대장선과 백의 함대는 어찌 되려나. 사방이 온통 검은 함대.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 바람 앞에 등불이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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